[3040 광장] 어머니의 마음으로

입력 2013-04-16 11:16:02

국제교류본부를 지휘하는 동료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다. 외국인 학생들이 본부에 찾아와 호소한다고 했다. "요즘 고국에서 전화가 빗발칩니다. 어머니께서 매번 울며 걱정하십니다. 전쟁에 대비하여 학교 차원에서 무슨 대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학교 차원의 대책도 없을뿐더러 개인 차원의 대책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집 안에 부탄가스와 라면을 쌓아둔들 그게 무슨 뾰족한 대책이 될 수 있으랴? 전쟁이라는 끔찍한 가정 앞에서 개인은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학생들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더러 불안감을 토로하더라마는, 2013년 현재, 아들이 전방에서 군 복무 중인 부모들만큼 속이 타지는 않을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상상한 전쟁은 재미있고 스펙터클했다. 수많은 병사가 목을 베이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었지만, 슬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름 없는 군사들의 무수한 죽음은 그저 조자룡의 충의, 장비의 무용, 제갈공명의 지략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했다. 적벽대전에서는 백만 대군도 떼죽음을 당했으니, 오만 정도가 죽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오천 명은 아무 느낌이 없는 숫자였다. 물론 중국과 우리나라는 인구 규모가 천양지차인지라 계백 장군의 오천 결사대에 이르면 오천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비장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비장함이란 처자식까지 죽이고 떠난 계백의 충절에 바쳐지는 감정이다. 오천 명은 여전히 뭉뚱그려 오천 명으로 불릴 뿐, 그들의 이름과 개인적 사연은 기억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고서야, 계백의 어머니나 오천 명 병사의 어머니나 어머니의 마음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조의 어머니라고 해서 조조를 낳아 사람 꼴을 만드는 데 보통 군사의 백만 배쯤 많은 품을 들였을 리 없고, 백만 대군 중 한 명의 어머니라고 해서 그를 기르는 데 조조의 백만분지 일만 수고했을 리 없는 것이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는 바빠도 뛰지 않고 아파도 약을 먹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 산고 끝에 아이를 낳고서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며 행여 아이가 불편할까 보살피는 마음, 아이가 밥을 먹으면 내 배가 부른 듯하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재판에 이용한다.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자가 제 아이라고 주장한다. 두 여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는데, 둘 중 한 아이가 죽었다. 죽은 아이 엄마가 산 아이 엄마를 부러워하여 남의 아이를 제 아이라고 우기는 상황이다. 요즘 같았으면 유전자 감식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난처한 재판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솔로몬은 부하더러 아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반으로 잘라 두 여자에게 나눠 주라고 명령한다. 가짜 엄마가 솔로몬의 판결을 수굿이 받아들인 반면, 진짜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진짜 엄마에게 '내가 저 아이의 엄마이다'라는 명제는 하늘 아래 명명백백한 진리였으나, 어머니의 마음은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진리를 내려놓는다. 아니, 어머니에게는 따스한 피가 흐르는 아이의 몸뚱이가 바로 진리이다. '한 왕실의 재흥'처럼 피도 없고 살도 없는 추상적 대의명분을 위하여 백만 대군의 목숨쯤 얼마든지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삼국지 영웅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알짬이 다른 마음인 것이다.

지난해 선거운동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의 마음'을 여러 번 강조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것이 한 표라도 더 얻어내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대통령에 대한 내 의구심은 한 꺼풀 얇아졌다. 통일부장관에 이어 대통령이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재삼 강조했다. 어쩌면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에서도 차가운 명분의 편이 아니라 따뜻한 생명의 편을 들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다.

박정애/강원대 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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