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정보 실패

입력 2013-04-15 11:26:41

지난주 미국 등 주요국 언론은 북한의 전쟁 위협에 차분하다 못해 무덤덤하기까지 한 한국인의 반응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외국 언론은 분쟁 전문 기자를 한국에 급파해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한국인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와 벚꽃 소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워싱턴 포스트) 이런 한국인의 평온한 일상 때문에 이들의 '한반도 위기' 보도는 김이 새는 모습이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무덤덤할까. 오(誤)경보(false alarm)와 경보의 민감도(sensitiveness)라는 분석 틀에 비춰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적의 공격 신호를 포착했으나 실제 공격이 없다면 이는 오경보가 된다. 이것이 잦으면 경보의 수용 거부로 이어지고 이는 실제 공격 신호까지 무시하는 사태를 낳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K. 베츠는 이러한 '정보 실패'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요약했다. "경보 체제를 민감하게 만들면 기습을 당할 위험은 낮아지지만 오경보의 확률은 높아지며 오경보는 다시 민감도를 떨어뜨린다."('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말콤 글래드웰)

진주만 기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기습 이전 일주일 동안 일본 잠수함이 인근 해역에 나타났다는 보고가 7번이나 있었으나 모두 틀린 정보였다. 일본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수많은 신호에 미 태평양함대가 그토록 둔감했던 이유다. 유대교의 속죄일(욤 키푸르)에 발발했다고 해서 '욤 키푸르 전쟁'으로도 불리는 1973년의 4차 중동전도 마찬가지다. 개전 2년 전부터 이집트의 공격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가 여러 차례 포착됐다. 그러나 그때마다 공격은 없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전쟁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기습에 속절없이 당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1990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대남 도발은 535회, 연평균 약 40회에 달한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외국 언론이 신기해하는 한국인의 '안보 불감증'을 잘 설명해준다. 연평균 40회의 잦은 도발이 국민의 마음속에 오경보를 발령했고 그 결과 정보 수용의 민감도 저하를 불러와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외신의 호들갑에 뇌동(雷同)해서도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는 우리 마음속의 '양치기 소년'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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