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인사청문회에서 고위 공직 후보가 줄줄이 낙마했다. 후보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크게 봐서 도덕성이 문제가 됐다. 2000년 김대중 정권 때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가장 잡음이 많은 청문회다. 이런 사태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울분과 냉소로 가득하다. 공직 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에 시민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게다. 이 기조가 지속된다면 공직 윤리와 정치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의 정서가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건 시민적 삶의 죽음과도 같은 상태다.
그래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은. 가장 바람직한 변화는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에 흠결이 많은 고위 공직 후보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될 것 같지 않다. 새 정부의 공직 인사가 일부러 하자가 많은 인사를 고른 것이 아니라면, 인사청문회의 풍경은 이미 공직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해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풍경은 지속적으로 되풀이될 것 아닌가. 용케도 어떤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인사가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한다고 해도, 그것이 공직 사회의 청렴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향력 있는 법조인들이 대형 로펌과 결탁하고, 고위 관료들이 퇴직하고 재벌 기업으로 직행하고 있는 것이 이번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현실이다. 공직 경력을 고가로 기업에 팔아넘기는 악습이 전관예우라는 관행으로 일상화돼 있는 것이다. 전관예우는 현재의 공직 사회가 전관을 매개로 자본과 결탁되는 구조적 현실을 의미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적으로 흠결 많은 후보를 보고 싶지 않다는 기대는 충족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이 현실 앞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직 사회에 대한 울분과 정치에 대한 냉소를 예방하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감상하는 법을 완전히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청문회 감상법은 '공직=청백리'라는 아주 오랜 타성에 기초해 있다. 공직자의 청렴 의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규범이었지만, 그런 공직자가 드물었다는 것 역시 보편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보면, 청백리는 초과의무적 행위에 가깝다. 즉 하면 칭찬받지만, 하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는 행위이다. 그런데 현재 인사청문회에서 시민 일반의 정서는 의무적 행위, 즉 해도 칭찬할 행위는 아니지만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행위로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기대를 투사한다는 얘기다.
과도한 기대가 나타나는 것은 아주 오랜 또 다른 하나의 타성 때문이다. 공직을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를 왕조시대의 '백성' 정도로 상상하는 시민들의 수동성이다. 권력이 왕조에 있고, 공직 임명에 백성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애처로운 기대밖에 더 있겠는가. 청백리는 그런 무력한 백성들이 권력을 쥔 공직자에 대해 갖던 판타지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공직자를 임명하는 대통령을 시민이 뽑고 있지 않은가. 사법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검찰총장도 미국처럼 투표로 뽑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왕조시대의 백성들처럼 공직에 대해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시민적 개입의 고단함을 피하려는 정치적 태만 때문일까? 아니면 온 사회가 자본 축적에 매몰된 나머지 공직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부패를 은연중에 승인하고 욕망하고 질시하기 때문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부패 공직자에 대한 과도한 울분과 청렴한 공직자에 대한 평소의 무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내막이 어찌 됐건, 인사청문회에 대한 반응이 울분과 냉소로 점철되는 것은 길이 아니다. 울분은 정서적 좌절이다. 배신당한 사람들의 내면이다. 그들은 아직도 '공직=청백리'의 규범적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냉소는 정서적 좌절에 대한 방어 행위이다. 울분에 지친 자의 태도, '공직=청백리'의 환상을 버리기 시작하는 자의 내면이다.
새로운 청문회 감상법은 이 단계를 넘어 성찰로 나아가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 비리에 울분을 토하는 대신 수동적 시민성의 뿌리를 파헤치고 주권자로서의 행동을 시작하는 입구를 찾는 길잡이로 인사청문회를 주목해야 할 듯싶다. 정치적 강자가 착해지기를 꿈꾸는 것만큼 헛된 꿈이 또 있을까.
남재일/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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