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입증 책임, 보상금도 푼돈 "안 받고 말지"
10일 오전 3시 5분쯤 대구 동구 신천동 송라로 11길 주택가 도로에서 후진하던 A(40) 씨의 25t 화물차가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전봇대가 쓰러지고 이와 연결된 변전기를 잇는 수평지지대가 균형을 잃으며 일대 4천500여 가구에 약 0.5초간 순간 정전이 발생했다.
신천휴먼시아 5단지의 전기차단기가 내려가면서 785가구에 29분 동안 전기가 끊겼다. 도점수 신천휴먼시아 5단지 관리사무소장은 "정전이 된 뒤 곧바로 자체발전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엘리베이터와 화재비상등 등 아파트 내 전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에는 즉각 전원이 공급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11시쯤 대구 중구 동인초등학교 인근 도로에 설치된 변압기를 택시가 들이받으면서 일대 4천여 가구가 정전됐다. 이 중 3천900여 가구는 3분 만에, 280여 가구는 50분 뒤에 복구됐다. 나머지 80여 가구는 변압기 교체 작업으로 4시간 40분이 지난 오후 3시 40분쯤 전기가 들어왔다.
자동차 충돌사고로 전기시설이 손상되는 정전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한정된 보상금과 입증 책임의 어려움 등으로 실제 보상신청을 하는 주민은 거의 없다.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공사는 직접 과실이 없는 한 피해 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전의 약관에 '자동차 충돌 등 한전의 과실이 아닌 사유로 전기 공급이 중지될 경우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운전자 과실의 정전 피해 책임에 대해 한전은 한 발 물러나 있는 것.
한전의 책임이 있더라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보상 대상이 5분 이상 전기 공급이 중단되거나 사용을 제한한 경우에 해당되고, 보상 금액도 정전 시간 동안 전기요금의 3배를 보상 한도액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약관에 '부득이한 사유로 전기 공급이 중지될 경우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고객은 비상용 자가발전기 등 자체보호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어 정전 피해자의 사전 대비책 마련 노력도 감안되는 만큼 보상금은 더 줄어들게 된다.
한국전력의 과실이 인정된 2011년 9월 15일 대규모 정전사태의 경우 대구경북의 중소기업들이 98억9천819만8천원(1천519건)을 보상금액으로 청구했지만 법원의 감정평가를 거쳐 실제 지급된 금액은 10% 수준인 10억2천672만4천원(1천140건)에 불과했다.
자동차 사고로 정전되더라도 한전의 복구가 늦어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한전에 책임을 묻기도 하지만 과실 입증 책임이 정전 피해자에게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나서서 보상신청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인동에서 식당을 하는 A(48'여) 씨는 "정전 시간 동안 냉장고가 멈추고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등 피해를 겪었지만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또 증명 절차도 까다로워 한전이나 사고를 낸 택시 기사에게 굳이 피해보상을 청구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한전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차량 충돌 등 외부요인으로 발생한 정전 건수는 지난해 560건,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135건이다.
한전 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자연재해와 차량 충돌 등 외부 요인으로 발생한 모든 정전에 대해 보상할 경우 전기요금이 인상돼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기 때문에 직접 과실이 아닌 이상 보상 책임을 지지 않고 보상을 하더라도 한도액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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