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학의 시와 함께] 시인들-이시가와 다쿠보쿠를 생각함-박후기

입력 2013-04-11 07:29:37

스물여섯 살, 요즘 같으면 막 무언가를 시작할 나이. 이시가와 다쿠보쿠에겐 가난과 각혈로 얼룩진 생이 이미 끝나버린 때. 죽기 전, 힘겹게 구한 5엔을 손에 쥐고 밥을 먹는 대신 꽃집에 들러 1엔어치 목련과 1엔짜리 꽃병을 샀다는 시인.

목련과 선동가는 다르지 않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과 선언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다릅니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의 혈담(血痰)과 내려앉은 새들의 투병과 사월의 선동을 밥그릇보다 먼저 시라는 꽃병에 주워 담습니다.

그러나 결핍을 모르는 시인은 모자 속에서 시를 만들고 호주머니 속에서 악수를 준비합니다. 그러므로, 밥이 되고 남은 것들이 겨우 시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욕망으로 사는 사람과 뜻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굳이 둘을 비교해서 말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 비춰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욕망에도 어떤 목표가 있을 것이다. 주로 물질이다. 그것을 이루면 욕망은 다른, 더 큰, 보다 많은 욕망을 설정하고 나아간다. 욕망은 이루면서 결핍을 생성하는 묘한 생리를 가졌다. 욕망은 이루기 쉬운 것 같지만 그래서 어렵다. 끝이 없다.

뜻에도 어떤 목표가 있을 것이다. 주로 영혼이다. 평화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따위다.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늘 결핍 상태이다. 이런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늘 겸손할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읽으면 뜻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시인 세계도 두 부류가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고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어디나 음과 양이 존재하는 법이다.

*石川啄木(1886~1912):일본의 시인.

-계간 《서정시학》 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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