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도 '낙인' 계속…우린 피해자였다"
9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강당. '뭉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으로 뭉친 세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마루(37'전북), 바다(37'인천), 심통(39'부산)이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성매매 경험 여성들이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이날 성매매 당사자에게 직접 '성매매 현실'에 대해 듣는 당사자 집담회 '무한발설'을 열었다. 주인공은 성매매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 회원들이다. '뭉치'는 2006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품고만 있어야 했던 본인들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보고자 만든 성매매 당사자 모임이다. 대구, 인천, 부산, 여주 등 8개 지역에 지역 모임이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을 시작으로 이날 네 번째 '무한발설'의 시간이 열렸다.
◆'성매매 자발성' 오해 풀었으면…
이들은 '무한발설'이 이어진 3시간 동안 성매매를 둘러싼 숱한 오해들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과감하게 풀어냈다. 대표적인 오해가 '성매매의 자발성'이다. 이들은 "성매매에 자발'비자발 따위는 없다"며 "성매매는 내 삶을 지속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고 우리는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14년 전 23세였던 마루 씨가 성매매 집결소로 향하면서 업주에게 받았던 첫 선불금은 50만원이었다. 당시 갈 곳도, 잘 곳도 없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구직 정보를 얻기 위해 생활정보지를 펼쳤을 때 마루 씨의 눈에 띈 것은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성매매 업소'.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그가 단돈 50만원과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해 뛰어든 성매매 집결소를 도망치듯 나오는 데는 꼬박 6년이 걸렸다.
바다 씨는 15세에 처음 성매매 집결소에 발을 내디뎠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바다 씨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학교와 가족,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지 못해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다. 꼬박 3일을 서울역에서 굶주리며 노숙 생활을 했다. 입을 옷과 먹을 밥을 준다는 남성의 꾐에 넘어가 따라간 곳은 경기도 파주 한 성매매 업소 집결지였다. 그렇게 시작된 성매매 생활은 20대 시절 모두를 보내고 30세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너무 어렸고, 성매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거리에서 성폭력을 당하느니 차라리 순간의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는 성매매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불행했던 이들을 성매매 집결소로 내몰았던 요인은 사회 도처에 깔려 있었다. 성매매 업소 단속을 나온 경찰도 이들 편은 아니었다. 심통 씨는 "경찰들은 단속을 나와 증거 자료를 만들기 위한 사진만 몰래 찍어갔다. 어느 업주나 경찰과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과시했기 때문에 경찰이 우리를 보호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성매매 여성도 보호받아야 하는 피해자
성매매 집결소를 벗어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막막한 생계수단을 구하는 일이다. 바다 씨는 오랜 성매매 생활을 끝내고 나왔을 때 버스를 타는 방법조차 몰랐다고 했다. 힘들게 구한 식당 일자리는 서툴다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해고됐다. 다시 구직을 위해 펼친 생활광고지에는 '노래방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만 수두룩했다. 바다 씨는 "집결지를 나왔을 땐 성매매 생활에 오랫동안 길들어 성매매 외 다른 경제활동은 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며 "붙잡아준 친구가 없었다면 집결지를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찍힌 '성매매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집결지를 나서는 순간 이들을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마루 씨는 "성매매 집결지를 나왔지만 나는 돈에 의해 팔린 불쌍하거나 밝히는 더러운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며 "집결지 안에서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괴리감을 사회에 나와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바다 씨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을 무릅쓰고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성매매 여성들은 성 산업 고리에 얽힌 행위자가 아닌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점을 우리 언어로 말해주고 싶었다"며 "성매매 여성을 죄인으로 보는사회의 편견과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는 성매매 당사자 여성들이 생각의 전환을 이루는 데 우리의 목소리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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