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어디가?

입력 2013-04-10 07:07:34

경주 벚꽃 놓친 상춘객 충북 청풍호 꽃 잡아라

# 13㎞ 이어지는 벚꽃길 이번주 절정

# 호수 위 하얀꽃비·분홍꽃비 흩날려

# '남편·처·첩 바위' 도담삼봉 절경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봄꽃들이 색색의 자태를 뽐내는가 싶다가 어느새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봄꽃의 제왕. 벚꽃은 그야말로 십일천하다. 화사한 모습으로 등장해 봄을 점령했다가 금세 힘이 다한 모습이다. 한 줌의 봄바람에 함박눈처럼 꽃비를 뿌려대며 사라지는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물쭈물하다 봄꽃 구경을 놓쳤더라도 아직 기회는 있다. 충북 제천의 청풍호 일대는 국내에서 벚꽃이 가장 마지막에 피는 곳이다. 때마침 청풍호 일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더구나 운치로 치자면 호반 벚꽃 드라이브 코스만 한 게 또 없다. 그냥 물굽이를 끼고 도는 것만으로도 황홀한데 화사한 벚꽃길마저 이어져 금상첨화다.

# 충북 제천 청풍호 벚꽃 나들이

◆호수위의 벚꽃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금성면 소재지로 우회전하자 '꽃대궐'이 펼쳐진다. 금성면 소재지를 지나면서 길 양옆으로 왕벚나무길이 초행인 기자를 맞는다.

금성면사무소에서 청풍대교까지 13㎞나 이어진다. 청풍대교를 지나쳐서도 능강계곡 입구까지도 벚꽃길이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너무 일찍 왔나? 벚나무 굵기도 그렇고 달려 있는 벚꽃도 탐스럽지 않다. 금성면부터 금월봉에 이르는 길에 심어놓은 벚나무는 수령이 10년이 조금 넘은 미성년목(?)이다.

그러나 늦은 봄에는 상황이 다르단다. 어디서 멈추더라도 그 자리가 곧 봄꽃 감상의 명당이 된다. 만개한 꽃이 아니라도 좋다. 다행히 꽃망울이 알알이 맺힌 벚나무들이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도열하고 있는 왕벚나무들의 꽃 터널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으로는 비취색이 감도는 호수가 따라다니고 왼쪽으론 금수산의 빼어난 산세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청풍명월의 절경만으로도 서서히 취한다.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 놓은 금월봉을 지나 KBS 제천 촬영장 입구에 이르면 썰렁했던 분위기가 일순 화사하게 반전된다. 심은 지 30년이 넘는 아름드리 왕벚나무의 튼실한 가지에 연분홍 꽃잎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여행객에게는 청풍랜드를 지나 금수산 등산길이 열리는 능강마을까지가 추천 코스다. 호반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지는 2㎞ 정도 되는 이 구간은 벚꽃 가로수가 긴 터널을 만들어 환상적이다. 푸른 호수의 물빛과 짙푸른 산 그림자가 분홍 벚꽃과 어우러져 장관을 만들어 벚꽃 드라이브가 마무리되는 곳은 청풍대교. 내륙 지방 최초의 사장교로 상판을 케이블로 매다는 2개의 주탑(높이 103m)이 그 자체로 볼거리다.

주변 볼거리도 쏠쏠하다. 청풍호는 면적 67.5㎢의 인공 호수. 호반 위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유산들을 이건해 둔 이 지역 대표 문화·역사공간이다. 문화재단지 아래 청풍나루에서 유람선에 오르면 청풍호 130리 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달 19일부터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청풍부사(府使)의 봄나들이를 시작으로 청풍호 벚꽃 포토 페스티벌, 떡메치기, 청풍면 마을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 체험, 타투 및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이 이어진다.

청풍호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황금자 제천시 문화관광 해설사는 "이번 주말에는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호수에서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길 위로 하얀비와 분홍비가 뒤섞여 흩날리는 장관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

◆사랑과 전쟁?

'아이를 낳지 못한 조강지처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대신 젊고 예쁜 첩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조강지처는 삐쳐서 돌아앉았고 첩은 임신한 배로 남편을 향해 교태를 부린다.'

청풍호에서 산길로 10㎞ 정도 달리면 충북 단양이 시작된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도담삼봉(島潭三峰)에는 이 같은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강 가운데에 3개의 기암으로 우뚝 솟아 있다. 마치 고깔을 뒤집어 놓은 모양새다. 3개의 바위 중 가운데 가장 큰 바위가 남편봉이다. 그런데 이 남편은 바람기가 좀 있다. 양 옆에 두 여인 바위를 거느렸다.

상류 쪽 작은 기암이 처봉(妻峰). 그리고 하류 쪽이 첩봉(妾峰)이다. 질투심에 가득 찬 처봉은 외로운 모습이다. 반대로 첩봉은 사랑받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선시대 판 '사랑과 전쟁'이다. 더구나 남편봉에 정자까지 있어 바람피우기(?) 딱 좋은 곳이다.

도담삼봉은 이야기의 보고다. 전해져 오는 얘기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조선건국의 주역 정도전과 관련된 일화다.

때는 조선 초기. 삼봉이 탐이 난 정선군이 먼저 시비를 건다. '남한강 상류인 강원도 정선의 삼봉산이 홍수에 떠내려와 이곳에 멈춰 도담삼봉이 됐다. 단양군이 이 삼봉을 즐기는 대가로 세금을 내라.' 마땅한 구실을 못 찾던 단양군은 당황했다. 그때 소년 정도전이 나선다. 정도전은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다. 삼봉을 도로 가져 가시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정선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인연 때문인지 정도전은 훗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다.

석문도 지나치기 아쉽다. 단양팔경 중 하나로 도담삼봉과 바로 이웃해 있다.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 산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오솔길을 5분 정도 걸어가면 있다. 석문에 살며시 얼굴을 들이밀자 남한강과 도담리 마을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예전시관도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도담삼봉 주차장 3층 건물에 마련된 이곳에서는 공예품 제작 전 과정을 디오라마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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