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세상 별난 인생] 군복 입은 '119 아줌마' 성미경 씨

입력 2013-04-04 14:15:30

남 도우니 내가 행복…봉사하러 해병전우회 가입

'출동! 119 아줌마'를 아시나요? 얼룩무늬 군복에 군화를 신고 빨간 명찰에 빨간 특공 모자를 쓴, 얼핏 보면 전역 해병대원 차림새다. 목소리와 행동도 용감(?)하다. 주인공은 '119 아줌마' 성미경(50'대구 북구 대현동) 씨다. 그녀는 삼륜차로 개조한 90㏄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 앞에 '예방경찰, 예방 119'란 스티커를 붙였다. '출동 요청'이 오면 즉시 비상등을 켜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현장으로 달려간다.

◆거동불편 노인 병원진료'장보기 손발 역할 10여 년

"위급하거나 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저를 불러 주세요. 곧장 달려갑니다."

성 씨는 남편(김정두'54)과 2녀 1남의 자녀를 둔 가정주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노약자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남 도와주기를 즐기는 성격이다. "내 한 몸 수고하면 밝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는 동네의 궂은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보면 기필코 도와주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보상이나 사례는 바라지도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외면한 적도 없다. 북구 대현동 어르신들은 성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스스럼 없이 손길을 내민다. 거동이 불편한 홀몸노인 등 노약자들의 병원 진료와 시장보기 등 손발 역할을 해준다. 10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고 있다.

◆'500원 모금 운동' 발로 뛰며 이웃들 설득

성 씨가 '노약자 도우미'로 변신한 사연이 있다. 2002년 월드컵대회 때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국민이 이토록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응원하는 열정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을까?' 그는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듯이 전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사는 비용의 일부를 모으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먼저 자신부터 실천에 나섰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내놓을 것이 없었다. 부업을 해서 번 돈으로 쌀을 사서 결식아동이나 홀몸 노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틈틈이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500원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솔직히 500원은 큰돈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 돈이 모여 쌓이고 쌓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적극적인 설명에 동참자가 하나둘 씩 늘었다. 그녀의 수첩에는 500원부터 1천원, 1만원 등 후원자들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다. 후원자가 늘어나면서 '국경 없는 정성 연합회'란 이름도 만들었다. 그녀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500원으로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해 고교 입학 만학도 "사회복지학과 목표"

성 씨는 10년 동안 동네 반장을 해왔다. 지난해 경신정보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만학도다. "노인 도우미 역할도 충실히 하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여 기필코 대학에 갈 것"이라고 한다. 졸업 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학과 진학이 목표다. 가정주부와 늦깎이 고교생, 노약자 도우미 등 바쁜 삶을 산다. 반장 수당을 모아 마련한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출동할 때는 신바람이 난다.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태우기 위해 삼륜차로 개조하고 비닐을 덮어 지붕까지 만들었다. 비좁긴 하지만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중고 소파 2개로 좌석을 만들었다.

1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숱한 일을 겪었다. '어르신 봉사'를 시작하면서 남편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살림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특이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다. 주위에서 '왜 그렇게 설치느냐?'며 핀잔을 주는 등 수모도 겪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사실은 제가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며 "10여 년 전 정말 어려운 일이 많아서 만약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기쁨도 크지만, 먼저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 부러워 해병 출신도 아니면서 '해병전우회'에 가입했다. 성 씨는 "이제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다"며 "나보다 힘든 노약자를 도와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밝게 웃는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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