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학으로 본 생로병사의 비밀…『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입력 2013-03-30 07:35:53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강신익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옥스퍼드 대학교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DNA 분자로 구성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하며, 사람의 몸은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론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는 '유전자가 우리를 만들어가는 청사진이고, 그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말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책의 지은이 강신익 교수는 '진화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쟁일 뿐 어떤 섭리나 목적에 따라 정해진 방향을 가지 않는다. 도킨스가 유전자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것이 정말 이기적 목적에 따라 행동해서가 아니라 그 결과가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기적 유전자' 혹은 '불량 유전자'라는 말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전자를 가지고 몸을 다 설명할 수는 없으며, '유전자가 곧 나'이며 '내가 곧 유전자'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NA의 이중구조 나선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1990년 인간유전체연구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사업이 끝나면 주머니에서 CD 한 장을 꺼내며 이것이 바로 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 사업이 끝났을 때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서열은 전체의 1.1%에 불과했고, 염기의 95%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DNA로 드러난 것이다. '유전자가 곧 나'가 아니라 '나는 유전자 이상의 존재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지은이 강신익 교수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95%의 염기서열 안에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온 기나긴 생명의 이력이 담겨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유전체는 생명의 설계도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책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 책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유전자의 입장이 아닌 사람의 입장, 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아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겪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책 제목은 다소 '낚시성'이라고 할만하다. 제목은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이지만 내용은 '몸이 탄생해서 성장하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생명현상을 의학과 인문학, 사회학의 융합'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지은이는 이것을 '인문의학'이라고 정의하는데, 생로병사의 경험적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다시 이것을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다.

책은 총 5부 3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태어남과 늙어감'과 2부 '질병과 고통'은 몸이 직접 경험하는 생로병고(生老病苦)의 현상을 다룬다. 여기서는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3부 '뇌와 마음'과 4부 '유전과 진화'는 생로병사의 과학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처럼 만든 것은 무엇인'지 찾아본다. 5부 '몸과 사회'는 앞의 1'2'3'4부를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장면들을 담았다.

지은이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국면이다. 죽음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만든 것은 우리의 문화이고, 그런 문화는 생물학적 사실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은 생명의 단절이 아닌 삶이 연속이며, 삶에 충실히 참여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은이 강신익 교수는 대한의사학회, 한국의철학회 학회장이며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287쪽, 1만3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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