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소통비타민]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과 골디락스 효과

입력 2013-03-30 07:45:38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 교수를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대구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뒷말이 많다. 대구시의 예산이 지원되는 행사에 지역 내부에도 역량 있는 인물들이 많은데 굳이 외지인을 공연 업무의 실질적 책임자로 임명해야 했느냐는 것이다. 지역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집행위원장을 맡으면 여러 장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신임 집행위원장 체제가 문화 산업 성장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딤프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뮤지컬축제로 2개월 후 7회째 행사를 개최한다. 2012년 '지방 브랜드 세계화 시범 사업'에 선정되었고, 뮤지컬 '투란도트' 중국 공연을 개최하는 등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기엔 영국의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EIF)과 뉴욕뮤지컬페스티벌(NYMF)의 벽이 너무 높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가 2012년부터 서울뮤지컬페스티벌(SMF)을 개최하면서 국내에서도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딤프는 한국 최초 뮤지컬축제에 걸맞은 명성을 유지하면서 명실상부한 국제적 축제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새 인물을 영입하여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을 부정적 시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우찌(B. Uzzi)와 스파이로(J. Spiro) 교수는 2005년에 발표한 미국 사회학 저널 논문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보고했다. 이들은 1945년부터 1989년까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뮤지컬들의 협력 관계를 분석하여 프로듀서, 대본가, 안무가, 스태프들 사이의 사회적 연결망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평가들로부터 예술적 호평을 얻은 작품들과 티켓이 많이 판매된 공연들은 서로 공통점이 있었다. 성공한 공연의 제작진들은 서로 친분이 돈독한 사이도 아니었고 전혀 모르는 이방인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해당 제작진들은 적당히 안면이 있는 정도였다. 뮤지컬처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창조문화 분야는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으로는 혁신이 발생하기 힘들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도 팀워크가 잘 발휘되지 않기에 완성도가 떨어지기 쉽다. 적당히 좁은 세상에서 창의성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딤프가 성공하기 위해선 이른바 '골디락스'(Goldilocks) 효과를 일으켜야 한다. 골디락스 효과란 곰 세 마리 동화에서 착안한 경제학 용어로,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의 성장을 이루고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있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소녀는 곰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우연히 들어갔다. 식탁에는 큰 접시, 중간 접시, 작은 접시에 맛있는 수프가 놓여 있었다. 소녀는 큰 접시와 중간 접시를 제쳐 놓고 작은 접시에 담긴 수프를 모두 먹어 치웠다. 왜냐하면 큰 접시의 수프는 너무 뜨거웠고, 중간 접시의 수프는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도 우찌와 스파이로 교수의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딤프의 성공을 위해서는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사람들 사이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딤프를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사와 집행위원 위촉 과정에서 전문적 식견이나 열정보다 인맥이 우선되기도 했다. 공연된 작품들의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전국적 주목을 끌기에도 부족하였다.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가 남이가' '큰형님' '남존여비' 등으로 표현되는 대구경북의 오랜 문화에 기초하고 있다.(매일신문 2012년 8월 18일 자, 올드 보이스 네트워크와 SAH 모델)

2013년도 딤프는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매우 가깝지도 소원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집행위원장을 선택했다. 이를 계기로 합리적 운영과 양질의 공연으로 딤프가 한 단계 약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딤프가 명실상부한 국제적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딤프가 일회성 예술 공연이 아니라 한류를 주도하는 '킬러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SNS 소통 역량과 디지털 참여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술포럼을 구성하는 등 체질 개선 노력도 해야 한다.

박한우/영남대 교수·TEDx팔공 설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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