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수백명 담당…방문 상담 거의 못해요"
20년 동안 대구 남구청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던 김모(46'여) 씨는 지난해 3월 복지지원과 다문화'모자가정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김 씨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1년간 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사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쇄도하는 업무를 처리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결국 김 씨의 건강까지 해친 것. 남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새로 임명된 사회복지직 공무원 중 과중한 업무로 몸이 쇠약해져 결국 사직한 사람도 있었다"며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공무원이라도 처음 사회복지 업무를 접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일에 지쳐 쓰러지고 있다. 특히 다른 직렬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업무량 탓에 사회복지 관련 부서는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결국 사회 안전망 부실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속출
대구 달서구 월성2동주민센터 사회복지팀 직원 6명은 2천400가구, 4천200명의 취약계층을 관리하고 있다. 소수의 직원이 너무 많은 인원을 관리해야 하기에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 1인가구가 대표적 사각지대다. 이 지역 취약계층 중 1인가구는 1천240가구. 문제는 지금의 인력과 시스템으로는 월성2동 내의 1인가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1천240가구를 직접 찾아가지 못한 탓에 오랫동안 연락이 안 돼 찾아가보면 시신으로 발견된 경우도 간혹 있다.
관리해야 하는 가구 수가 많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깊이 있는 상담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차규 팀장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1인가구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한 달에 평균 2건은 된다"며 "이런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제대로 된 상담이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결국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과중한 업무가 제대로 된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총액인건비제 폐지해야
사회복지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과중한 업무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총액인건비제 폐지'를 꼽고 있다. 총액인건비제는 행정기관이 정해진 인건비 한도 안에서 인력 규모를 결정하는 제도. 이 제도가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충원을 가로막아 업무 과중을 불러온다는 것.
대구 남구청 한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맡아야 할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공무원 충원율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인력 충원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한데 인건비에 묶여 제때 채용을 못 해 한 사람이 소화해야 하는 업무량만 늘어났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충원할 때마다 인건비의 70%를 국비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채용 후 3년이 지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재정으로 인건비를 충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인력 확충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국가가 사회복지 인력 확보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지방자치단체도 인력 확충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지 말고 앞장서 정부에 인력 확충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복 e-음' 권한 나눠야
2010년 도입된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인 '행복 e-음'의 관리 권한이 사회복지직 공무원에게 일임된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행복 e-음'이 생기면서 타 부서의 취약계층 관련 업무가 사회복지직 공무원에게 몰리는 이른바 '깔때기 효과'가 나타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현장을 방문해 취약계층의 실태를 파악하고 사례를 관리하는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북구청 한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지금처럼 행복 e-음을 통해 모든 업무를 사회복지직 공무원에게 맡긴다면 아무리 인력을 늘려도 과중한 업무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교육비 지원 신청과 같은 신청'접수 업무는 교육청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행복 e-음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 권한을 줘 입력할 수 있게 하면 지금의 과중한 업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시 사회복지직 공무원 행정연구회 회원들은 28일 대구시 사회복지여성국장과의 간담회에서 "행복 e-음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복지 업무와 연관이 있는 타 부서 공무원들에게도 확대해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업무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