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김 없이 찾아오고… 끈한 꽃향기 내 맘을 흔드네…
봄이다.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고 있지만 오는 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만개한 산수유와 매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그러나 봄날은 짧다. 그래서 아쉬움도 길다. 봄을 알리는 매화와 산수유 꽃이 봄 소식을 전하는가 싶다가도 봄날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봄꽃 구경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저곳에서 꽃향기 물씬 풍기는 봄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중 전남 구례의 산수유마을과 광양 매화마을은 대표적인 봄꽃 여행지다. 구례에서 광양까지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도 최고의 봄꽃 길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섬진강과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산수유와 매화가 화려한 꽃길을 만들고 있다.
◆100m 미인 산수유 꽃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원IC에서 내리자 봄빛이 완연하다. 도로변에서부터 노란 산수유꽃이 마중을 한다. 산수유 꽃 터널을 뚫고 20여 분을 달리자 구례군 산수유마을이 나타난다. 산수유마을에는 샛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계곡 주변은 물론 계곡물까지도 노랗게 물들일 기세다. 논두렁과 밭두렁도 예외가 아니다. 골목길과 돌담에도 꽃이 방글방글 피어났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화려하지도 향기를 풍기지도 않으면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 그 꽃 수만 그루가 일제히 피어 노란 꽃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봄의 전령 산수유는 2월 말이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샛노란 꽃은 너무 작아서 한 송이 한 그루로는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수십, 수백 그루가 두루 어울린 다음에야 하나의 아름다운 꽃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100m 미인'이라는 말이 붙었나 보다.
산수유꽃축제(3월 29~31일) 준비도 한창이다. 꽃 무더기 사이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다. 도로변의 풀을 뽑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보인다. 지난해보다 조금 늦은 날짜에 열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꽃이 질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산수유가 지역특산물이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임진왜란 때 피란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산수유나무를 많이 심었단다. 깊은 산골이어서 농사짓기가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지인데다 일교차가 크면서 바람이 적고 볕은 잘 들어 산수유나무가 잘 자랐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는 곳 인근에는 산수유문학관이 새 단장을 준비 중이다. 축제에 맞춰 29일 개관할 예정이다. 산수유문학관은 산수유 열매를 빼닮았다. 빨간 열매를 똑 떼어 한입에 쏙 넣고 싶다. 문학관 뒤편에는 산수유동산과 산수유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꽃으로 노랗게 물든 마을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밤새 누군가 노란색 물감을 부러 풀어놓은 것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가 입안에서 맴돈다.
◆섬진강 따라 핀 매화꽃
산수유마을에서 매화마을로 가는 길은 속수무책. 1시간 정도를 신나게 달리다 매화마을을 10㎞ 정도 남겨두고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 마을에서 매화꽃축제(3월 23~31일)가 시작되는 첫날인 만큼 어마어마한 차량들이 입을 벌어지게 한다. 전날 갔던 산수유마을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차 안에 있기도 갑갑해 혼자 차에서 내려 매화밭을 거닐었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도로 상황과는 달리 가슴이 '뻥' 뚫렸다.
산수유마을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겨우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평소 1시간 조금 넘는 거리. 기진맥진. 그러나 수만 그루에서 핀 매화꽃을 보는 순간 황홀해진다.
매화마을 농원 아래 도로는 시장판이다. 축제 기간이라서 그런지 엿장수 가위 소리와 스피커가 찢어져라 틀어놓은 트로트 가락이 귀를 때린다. 서둘러 농원 안 꽃길로 들어서자 그제야 조용해진다. 파란 하늘 아래 송이송이 매달린 매화꽃이 팝콘처럼 탐스럽다. 드문드문 피어난 홍매화는 또 다른 멋이 있다. 강렬한 붉은색이 단아한 매력이다. '참 곱다. 고와.' 감탄사가 절로 난다.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꽃길은 이리저리 마을 농원을 이어주고 있다. 농원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길이 정겹다. 푹신푹신한 흙길. 힘들이지 않고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다. 걷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
매화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또 다른 별천지가 나타난다. 언덕마다 산마다 매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눈이 내린 것 같다. 매화가 아닌 설화 같다. 푸른색의 청보리와 대비돼 더욱 희다. 섬진강 물굽이 따라 살포시 내려앉은 매화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지리산 자락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땅에 떨어진 매화를 가만히 손 위에 놓아보았다. 5개의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이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무르익는 봄날에 꽃 한 송이에도 취해버린다. 한 송이 매화에도 행복해지는데 우리네 인생은 무엇이 그토록 바쁘고 심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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