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가 포근한 언덕이 되는 이유
깎지로 오그라들어야 꽃이 되는 이유
너, 아느냐?
(문경의 시 '그것들과의 차이' 중에서)
목련이 꽃을 피웠다.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문경의 시를 읽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달라지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는 것. 그게 언제나 답답했다. 나는 언제나 나였고, 그는 언제나 그였고, 그녀는 언제나 그녀였다는 것. 이것은 언제나 여기에 있고,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엇이라는 것. 본질이 여기에 있고, 본질이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한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사람도 그렇고, 자연현상도 그렇고, 사회현상도 그렇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개별적인 인간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세포가 수없이 자기분할을 하면서 영역을 넓혀가더라도 결국은 세포가 지닌 본질적인 의미가 달라지진 않는다. 지금 여기에, 어제 거기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대립과 갈등이 같은 모습으로 무한 반복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장의 굴뚝을 세우던 사람들이 여전히 강의 바닥을 판다. 반복되는 지속성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의 몫에 불과하다. 그것이 언제나 쓸쓸했다. 그러면 영원히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일까? 과연 단순한 반복일 뿐일까?
'너, 아느냐?' 신기하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래 머물렀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차이'라는 의미 공간이 나타난다. '모름'은 무조건적인 과거 사실의 경도(傾倒)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앎'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사실, 스스로 앉은 집의 자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집을 둘러싼 풍경들은 곳곳에서 차이를 만든다. 같은 현상들이 반복되지만 이미 그 현상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반복되는 풍경을 변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차이이다.
같은 모습으로 대립과 갈등이 나타나지만 그 내면적 풍경은 차이가 있다. 인간의 변화, 자연현상의 변화, 사회의 변화는 바로 그 차이에서 일어난다. 그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반복 속에서 차이를 찾아야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를 찾아낼 때 이루어진다. 나와 나, 나와 그, 나와 그녀의 현재 조건들도 그것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그 차이를 통해 내가 달라져야 한다.
사회의 변화, 나아가 역사의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반복 속에서 발견한 차이에 미래를 위한 열쇠가 존재한다. 차이는 '열심'(熱心)이라는 정서 속에 있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상에 대한 거리 두기, '냉정'(冷情)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데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걸 기대하고 기다리는 네가 바보인 거야. 아이들도 변화시키기 어려운데 50이 넘은 사람에게 그런 걸 기대해선 안 돼. 오히려 무관심하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이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쓸쓸했다.
봄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반드시 반복 속에서 차이를 찾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와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나'만이 아닌 '우리'가 꿈꾸는 모습으로 변했으면 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보다는 '냉정하게 현재를 살피겠습니다'는 말이 필요한 시대이다. 모두가 앞으로만, 위로만 달려가는 일방통행으로는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목련이 더욱 활짝 꽃잎을 열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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