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거처 - 이태수(1947~)
오래전 우리 집 마당으로 이사 온
계수나무 두 그루,
바라보면 볼수록 침묵의 화신(化身) 같다
겨울이 다가서자 지다 남은 잎사귀들이
햇빛 받으며 유난히 반짝이지만
몸통은 벌써 침묵 깊숙이 붙박여 있다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오르든,
바람에 휩쓸리어 다 지고 말든,
침묵만 몸통에 은밀하게 오르내리고 있는지
해마다 눈에 띄게 커지는 계수나무 둥치는
제 안에 침묵의 거처를 키우고 넓혀
차곡차곡 쟁이려 하는 것 같다
두 계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산딸나무도
자기에겐 왜 마음을 주지 않느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월간 '유심'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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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을 넘어 종심(從心)의 길목이 가까운 시인의 모습이다. 들으면 바로 알고 마음을 따라가도 어긋남이 없는 삶을 나무에서 읽어낸다. 계수나무의 침묵도 산딸나무의 응시도 그저 그렇게 고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귀도 어두워지고 눈도 점점 멀어진다. 그렇게 들으려 하지 않아도, 기를 쓰고 보지 않아도 세상 읽어낼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하물며 마음인들 다르랴. 제대로 늙는다는 것은 말 수를 줄이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마음속 '침묵의 거처'는 쟁여도 쟁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런 나무 또한 시인을 그렇게 보고 있는 풍경이다. 은근슬쩍.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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