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캠코더·MP3…잘나가던 제품들 수년새 속속 백기 투항
'내 손안의 세상'.
스마트폰이 2010년 본격 등장한 후 기호지세(騎虎之勢)다.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족하다. 뉴스는 물론 할인항공권 가격 비교, 재테크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 검색은 물론 게임. 카메라,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첨단 기능을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만 집어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른바 '스마트 시대'의 도래.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스마트폰 등장으로 우리와 함께했던 많은 것과 모습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백기 투항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최첨단을 자랑하던 디지털 기기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MP3, 휴대용 게임기, 소형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음성녹음기, 내비게이션, PDA 등 몇 년 전만 해도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며 사랑을 받아오던 디지털 기기들이 잇따라 백기 투항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블랙홀'처럼 모든 첨단 기능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CD와 전화번호부, 폴라로이드 및 필름 등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는 검색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밀어냈던 디지털카메라도 몇 년이 안 돼 똑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학교 졸업앨범을 밀어냈던 사이클럽 등도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에 밀려 이용자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오랫동안 안방을 독차지했던 TV도 위치가 점점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의 터줏대감인 복사기도 마찬가지.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부문을 찍고 이를 PC를 이용해 복사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캠코더. 라디오. 리모컨 역시 슬슬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손목시계는 시간을 보는 기능성보다 패션성이 강조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시계 기능은 물론 알람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필수품으로 사랑받았던 손거울 역시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화면이 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진이나 동영상 기능을 이용하면 버스 안에서든, 도로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테란도 저그도 스마트폰에 졌소
1999년 등장해 한국에 게임 열 품을 몰고 온 스타크래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국내에서만 게임 소프트웨어가 전 세계 판매량의 절반 수준인 450만 장이 팔렸다. 'e스포츠'라는 새로운 스포츠 장르가 등장하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겼다. 공군에 게임특기병도 생겼다. 2006년 초등학생 설문조사에서 프로게이머가 장래 희망 직업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10년 천하'.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되면서 '골동품'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삼삼오오 팀을 짜 게임을 하던 예전과 달리 '나 홀로 게임'이 늘면서 팀 단위 게임 위주인 스타크래프트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신 '애니팡' '보석팡' 등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과거 집단으로 모여 놀이를 해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SNS(소셜네트워크)로 '나만의 집단'을 구축할 수 있어 굳이 집단으로 하는 놀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뽕뽕뿅' 거리는 소리로 중고교생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전자오락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를 대체해 동네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PC방도 불안하다. 대구 북구 태전동에서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태현 씨는 "매년 수입이 20%씩 감소하고 있다. 한마디로 폐업 위기다. PC방 10곳이 문을 닫으면 새로 생기는 곳은 2, 3곳에 불과하다. 이용고객이 사라지는 것이니 해결 방법도 없다"고 푸념했다.
◆추억마저 앗아간 스마트폰
매 교시가 끝나면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와 놀던 학교 풍경도 사라지고 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던 교실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에 열중하는 '침묵'이 대신하고 있다.
유리벽 사이로 이웃들의 가족사진을 보며 웃음 짓던 동네 사진관들이 한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보급 확산으로 휘청댔던 동네 사진관은 이번에는 고화질 카메라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에 카운터 펀치를 맞고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아예 동네 사진관이 없는 곳도 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 사진관은 필름의 현상'인화 수입은 끊어졌고 가족 및 여권'증명사진 촬영으로 버티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촬영'현상'인화까지 컴퓨터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필름 현상을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때 골목마다 있던 DVD'만화 대여점이나 만화방들도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남아있는 가게들도 폐업 수순을 밟는 곳이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보거나 DVD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읽는 향기가 났던 헌책방도 추억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1980년대 한창때는 도로 옆에 즐비했던 대구역 지하도 헌책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중국 공예품 등 골동품 가게로 변해버렸다. 대구는 남문시장 근처 등에 10여 곳의 헌책방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북구 복현동의 한 서점 주인은 "1980년대 복사기가 등장하고 비디오와 책 대여방이 등장하면서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하더니 90년대 초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그나마 사전류 등이 헌책방을 유지하는 뼈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결정타를 맞았다. 스마트폰으로 자료검색이 무한정 가능해지자 사전류까지 외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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