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한지·종이와 노동…실험 결과 한자리에
한지를 두세 겹 붙인다. 한지를 길게 자르고, 한 면은 손으로 일일이 찢어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수백, 수천 개의 과정을 거쳐 벽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 송광익은 이처럼 종이로 고행에 가까운 작업을 해오고 있다. 맥향화랑 개관 37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송광익 초대전'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재료를 두고 했던 무수한 실험, 무한한 반복행위의 결과물들이 전시된다.
"어릴 적 창호지 문에 비치던 그림자가 아직도 생생해요. 창호지에 물이 묻으면 반투명하게 바뀌고, 창호지 너머로 공기와 말소리가 넘나들었죠. 막혀 있으면서도 소통되는 지점이 참 재미있어요. 요즘은 점점 더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요."
작가의 작품 역시 소리도, 그림자도 드나드는 공간이다. 흰 한지, 그리고 검은 먹물로 물들인 한지의 강한 대비가 두드러진다. 작가의 지난한 노동이 투영된 설치 작품은 만지면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가 난다. 작가의 작품은 '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 특징이다. 한지를 접으면 그 공간 뒤에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겨난다. 작가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이 빚어내는 빛과 그림자가 매력이다.
과거 전시를 기억하며 만든 작품도 눈에 띈다. 갤러리 신라, 헤이리 등에서 열렸던 전시 포스터를 배경으로, 신문지 작업을 선보인다. 신문지를 풀로 두 겹 붙이고, 그것을 길게 잘라낸다. 손으로 뜯어내고 먹이 스쳐가면 과거의 기억이 중첩된 작품이 된다. 기억을 중첩시키는 이 작품은 다양한 기억과, 또 작가의 지난한 노동을 품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종이'와 '노동'에 집중한다.
"종이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역사적 가치와 인간의 노동 과정이 맞물리는 것이 바로 종이죠. 특히 한지에는 사람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어 좀 더 인간적이에요."
이 같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하루종일 종이로 비슷한 형태의 노동을 반복해야 한다. 종이를 자르고, 접고, 찢고, 칠하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고행이다.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노동과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 거짓이 허용되지 않는 작품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이 가장 진실합니다. 거짓이 없죠. 머리에는 가식이 포함될 수 있지만 노동에는 가식과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편안해요. 고행이나 마찬가지지만, 하고 나면 굉장히 좋아요."
종이라는 물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작가의 노동이 집약된 작품은 4월 5일까지 맥향화랑에서 감상할 수 있다. 053)421-2005.
최세정기자beacon@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