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세상 별난 인생] 상투·갓·도포·수염 이색복장 대구도심 활보 최정해 씨

입력 2013-03-21 14:23:06

양반 차림 보면 심신 단정…'양반 운전' 계도중

회색 수염에 갓을 쓰고 흰 도포에 괴나리봇짐을 진 사람이 대구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단순한 이벤트 복장이 아니다. 사시사철 그 모습이다. 마치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사람 같다. 길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지만,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다.

그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수소문 끝에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며칠 전 대구 중구 동인동 찬양율동신학원에서 수업 중인 그를 만났다. 상투를 튼 모습에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열심히 율동을 익히고 있다. 그 주인공은 최정해(67'대구 동구 중대동) 씨다. "도대체 왜 이런 차림새를 하고 있느냐?"며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했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인생 사연을 밝힌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수염을 기른 것은 '양반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는 "이 험난한 세상에 양반과 선비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정말 올바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양반 차림'을 하고 '양반운동'을 펼치고 있다. 양반운동의 핵심은 '양반운전'이다. "대한민국은 교통사고가 많은 나라"라며 "모두가 양반정신으로 운전하면 무질서와 난폭운전, 과속, 법규 위반 등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바로 '양반운전, 양반 언행'의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이런 직함을 의뢰하지는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

팔공산 자락 도동에서 태어난 최 씨는 광부, 양계장 관리인, 시내버스 기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대구 경일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년 때까지 농사를 지었다. 27세에 결혼한 후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강원도 장성 탄광으로 갔다. 광부 생활은 고단하고 위험했지만,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5년 동안 막장일을 했다. 옆 탄광에서 사고가 나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에 광부 생활을 접었다.

경기도 일산의 양계장에서 5년 정도 일하다가 서울로 가서 시내버스 기사가 됐다. 10여 년간 버스기사로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1994년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이때를 '인생역전'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남을 미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머릿속에 번갯불처럼 '양반운전'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양반운전과 양반 언행'을 솔선수범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 양반이 되기 위해 갓과 도포 차림을 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갓 쓰고 도포 입고 운전하는 버스기사'로 눈길을 끌었다. 쉬는 날이면 가슴에 '양반운전'이란 리본을 달고 각종 행사장에서 교통정리와 양반운전 홍보활동을 펼쳤다. "교통사고 없는 나라를 위해 정책적으로 양반운전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정부 기관에 건의했으나 콧방귀를 뀌더라"며 "그래서 스스로 '양반운전'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선비정신 실천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선비정신'을 가지기로 다짐했다. 이 시대의 양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의(義)가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9년 전 버스회사에서 퇴직해, 아버지가 하시던 양봉업을 이어받았다. 수염도 기르기 시작했다. "선비와 충신의 삶을 살기 위해 겉모습을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며 "양반 차림새를 하면 언행이 조심스러워지며 스스로 모범적인 자세가 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양반의 고장인 안동 하회마을에도 갔다. "하회마을에 가니 양반차림을 한 사람이 없더라"며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인기가 많았다"고 자랑한다.

양반(?)답게 효심도 지극하다. 넉넉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부친은 2년 전, 모친은 지난해에 돌아가셨다. 그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으신 모친을 위해 매일 휠체어로 바깥 산책을 시켜주는 등 효자로 소문났다. 자녀(1남 3녀)는 모두 출가시켰다.

◆봉사하는 삶

버스회사를 퇴직한 후 '봉사의 삶'으로 전환했다. 이른 아침 학생들의 등굣길에 교통봉사를 하고 가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양반운전' 홍보교육을 하기도 한다.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아이들과 교통법규를 어기는 차량을 발견하면 곧바로 불호령을 내린다. 2004년 11월엔 '양반운전, 양반 언행'이란 개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유치원생들에게 교통법규 교육을 하기 위해 동요도 만들었다. 율동을 배워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3년 전 찬양율동신학교에 입학, 보훈병원과 무료 급식소 '엘림 사랑의 집' 등에서 찬양과 율동봉사를 한다. 그는 "국민 모두가 양반이 돼 양반사회가 정착하면 교통사고는 물론 범죄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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