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대학 심리학과 티모시 윌슨 교수가 말하는 '스토리'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기의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종의 개인적 내러티브이다. 이 개념에 따라,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아까운 목숨을 끊는 10대, 20대의 스토리를 가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1.학교에 가기 싫다. 가봤자 힘센 아이들한테 얻어맞기나 하고 운 좋게 안 맞더라도 종처럼 심부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교에 안 가면 당장 담임선생님이 부모님께 알리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은 나를 야단칠 테고. 아, 괴롭다. 죽어버리면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겠지. 그래, 유서에다 나를 괴롭힌 아이들 이름을 적어놓고 죽자. 걔들은 죗값을 받아야 한다. 부모님한테는 미안하지만…….
2.공부하기 싫다. 지금껏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죽으라 공부해서 이만한 성적을 유지해왔는데, 앞으로 또 3년을 이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망할 놈의 입시제도 아래, 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다. 아무리 파닥거려도 벗어날 수 없다. 죽어서라도 자유로이 날고 싶다. 내가 죽으면, 이런 입시제도를 만든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끼겠지. 부모님한테는 미안하지만…….
3.취직하기 너무 어렵다. 그래도 대학물 먹은 놈이 이주노동자들이나 일하는 공장에 들어갈 수도 없고. 어디 말단공무원 정도 임금이라도 주는 사무직 없을까? 그런 데가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텐데. 아, 나를 알아주지도 받아주지도 않는 이놈의 세상이 나를 차기 전에 내가 세상을 먼저 차버릴까? 부모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들은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다. 누가 이들을 그곳으로 밀어붙였을까. 1번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 2번은 잔인한 입시제도, 3번은 좋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장기불황 사회라고 답할 수 있겠다.
죽는 젊은이들의 유서에는 대개 부모님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언급이 있다. 실제로 자식의 죽음 앞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사람은 부모다. 나도 부모 입장인지라 그런 장면을 상상만 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편이 뜨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도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떠는 노숙자를 지나치며 젊은 부모가 아이에게 겁을 주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봤지, 너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그 뒤에는 필시 이런 스토리가 따라붙는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라. 반드시 명문대에 들어가서 그 학벌을 발판으로 돈을 벌어라. 부지런히 저축하여 내 집을 마련하고 재테크를 해라. 거기서 한 수라도 잘못 놓으면 너는 노숙자가 된다(떨어진다, 벼랑에서). 이것이, 우리나라 부모'교사'어른'선배가 자식'제자'아이'후배 등 아랫대 사람들에게 되풀이하여 주입하는 벼랑 끝 스토리다. 이 폐쇄적인 스토리는 아이가 농사를 짓거나 예술을 하거나 장인(匠人)이 되거나 '행복한 방랑자'가 되는 결말은 처음부터 열어놓지 않는다. 그저 벼랑 끝 마인드로 살거나 벼랑에서 떨어지거나, 두 가지 결말밖에 없다.
1번 혹은 2번의 경우, '1, 2년 학교를 떠나 주중에는 봉사 활동, 주말에는 드럼을 두드려 보아라, 그다음 학교로 돌아가든 기술을 배우든 검정고시를 보든 네가 결정해라', 이런 스토리는 안 되는 걸까. 3번한테는, '스님들처럼 만행(萬行)을 떠나 보라, 돈 떨어지면 일도 하고 얻어먹기도 해라, 세상을 보는 눈, 무엇보다 너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이 뜨이거든 돌아오라'는 스토리가 어떨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죽어서 모든 가능성을 끝장내 버리는 얘기보다야 낫지 않은가.
벼랑 근처도 잘 찾아보면 덜 가파른 비탈길이 있다. 제발이지 다른 풍경에도 눈을 돌리고 다른 길도 찾아보고 다른 스토리도 좀 만들어보자.
박정애/강원대 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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