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4월 9일 문을 연 한양 제중원에서 치료한 환자는 얼마나 됐을까? 1886년 알렌과 헤론이 작성한 '조선정부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개원 후 첫 1년간 1만46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당시 환자들의 주요 질환으로는 말라리아가 가장 흔했고, 소화불량, 피부병, 성병(매독) 등도 많았다. 이 밖에 결핵, 나병, 기생충병, 각기병 등이 있었다.
처음 1년간 입원 환자는 265명에 이르렀다.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도 150명에 달했는데, 팔과 다리 등의 절단 수술이 많았다. 괴사병 환자의 대퇴골 절제수술, 척추골 수술처럼 대수술도 있었고, 백내장 수술도 10건에 이르렀다.
알렌의 보고서에도 나와있듯이 한양에 있던 제중원은 말 그대로 '정부병원'이자 '왕립병원'이었다. 조선 정부가 병원 부지와 건물, 시설, 경상경비를 지원했고 주사와 하인 등 인력까지 제공했다. 미국인 의사에게 급여도 줬다.
이에 비하면 대구 제중원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존슨이 세운 제중원도 1899년 12월 24일 개원 후 1년이 채 못 되는 이듬해 여름까지 1천700여 명을 치료했고, 수술도 50차례나 이뤄졌다. 제중원(1911년부터는 동산기독병원)을 찾은 환자는 1906년 5천 명, 1913년 1만800명, 1917년 1만7천 명으로 급증했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로 볼 수 있다.
밀려드는 환자들 속에서 의사 존슨은 자신의 건강조차 돌볼 틈이 없었다. 결국, 1901년 발진티푸스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됐고 몸이 크게 상했다. 박창식 목사가 쓴 '동산 선교 이야기'(2012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쇠약해진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1903년에 새로운 병원 신축을 착공했다. 1905년에는 앞당겨 안식년 휴가를 보냈고, 이듬해 돌아왔지만 한번 약해진 몸은 재발을 거듭했다. 선교부는 의료활동을 중단하고 쉬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병원 상황이 쉴 수 있는 형편이 못 됐다.'
건강이 악화된 존슨은 대구에 부임한 지 15년 만인 1912년 11월 대구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이글록에 자리를 잡은 존슨은 비행 청소년들을 돌보는 보호관찰관 대리직을 맡아 봉사했다. 1951년 7월 26일 자 지역 신문은 존슨의 사망 소식과 함께 한국에서의 의료 및 선교 활동을 소개했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개척적인 의료 선교사였으며, 지역의 보호관찰관 대리였던 존슨이 7월 19일 목요일 아침 글렌데일 요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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