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값 2천원 확 올리면 흡연율도 확 떨어질까

입력 2013-03-16 07:30:02

국민건강 위해서라는 정부, 가격 인상 추진의 셈법

올해부터 대구 대부분 도심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2만~3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매일신문 DB
올해부터 대구 대부분 도심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2만~3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매일신문 DB

조선은 '애연(愛煙) 국가'였을까? '골초 국가'였을까?

1653년부터 14년간 조선에서 살았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에는 "어린아이들이 4, 5세 때부터 담배를 배우고,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고 기록돼 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조선왕조실록' 등을 근거로 추산한 것에 따르면 18세기 말 정조 때 흡연자 수는 전체 인구 1천839만 명 중 20%가 넘는 360만 명 이상이었다.

담배는 광해군 때인 1616년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다. 포르투갈어 '토바코'(tobacco)가 일본에 전해지며 '담바고'가 됐고, 조선에 와서는 '담배'로 굳어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후 담배는 서민 생활과 문화 속에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400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 2011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47.3%다. 국내 담배 시장 규모는 10조원 정도다.

◆이제 온 사방이 금연구역

흡연율은 '기호품인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수'(애연 관점)로 볼 것인지 '악마의 연기를 내뿜는 공공의 적의 수'(골초 관점)로 볼 것인지에 따라 사회에 다르게 인식된다. 지금은 후자의 관점이 각종 제도와 정책에 적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 주변에 금연 환경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단군 이래 가장 강력한 '금연의 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올해 7월부터 음식점의 흡연실 이외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면 손님은 10만원, 업주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PC방, 당구장, 성인오락실 등은 6월부터 아예 흡연이 전면 금지된다.

실외공간도 금연구역이 점점 늘고 있다. 대구만 해도 지난해 8월 동성로 금연거리에서 흡연자에게 과태료 2만원을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각 구'군 지자체가 잇따라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주요 도심공원과 학교'유치원'어린이집 주변, 버스정류장, 택시승차대 등이다. 앞으로 각 지자체는 금연구역 안내판을 설치하고, 단속 인력을 투입해 흡연자에게 과태료 2만~3만원을 부과할 계획이다.

◆담배 한 갑에 4천500원?

금연구역 지정 및 과태료 부과가 '직접'적인 금연정책이라면 '간접'적인 금연정책도 있다. 담뱃값 인상이 대표적이다. '비싸면 덜 사서 피운다'는 논리다.

이전부터 담뱃값 인상 소식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로 보도했다. 1962년 8월 정부가 국산 담배에 대해 최고 60%까지 가격을 올리자 한 신문 기사에서는 "정부의 담뱃값 기습 인상에 서민 물가가 요동칠 것"이라고 분석했고, 또 다른 기사에서는 "애연가들이 담뱃가게로 몰려가 '가격이 오르기 전 재고품을 내 놓으라'며 주인과 옥신각신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담배 매출은 타격이 없어 같은 해 12월에는 '연기는 하늘로 돈은 국고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담뱃값 인상은 2004년 500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무려 2천원을 올릴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내 애연가들이 깜짝 놀랐다. 김재원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이달 6일 담뱃값 2천원 인상을 골자로 하는 '지방세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담뱃값에 포함된 담배소비세 및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현재 가장 많은 가격대인 2천500원 하는 담배는 80% 오른 4천500원이 된다.

◆담뱃값 인상 효과 있을까?

유례없는 담뱃값 인상이 가져올 부작용으로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담뱃값이 2천원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포인트 이상 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담배는 값의 62%가 각종 세금으로 구성돼 있어 조세부담률이 높은 생활품목이다. 따라서 담뱃값이 오르는 만큼 저소득층일수록 높은 세금 부담을 떠안게 돼 조세형평성 원칙과 사회적 약자 배려 원칙에 어긋난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김재원 의원은 최근 공식석상 및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담뱃값은 조금씩 인상하면 큰 효과가 없다. 한꺼번에 2천원을 올리는 것은 정책적 충격요법이다"며 "서민들은 담배를 많이 끊게 돼 조세부담이 준다.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직장인 장현진(30'대구 중구 대봉동) 씨는 "돈 없으면 끊어야 하고, 돈 있으면 마음껏 피워도 된다는 말이냐. '유전끽연 무전절연'인 셈이다. 서민들을 무시하는 것 같은 발상에 화가 난다"고 했다.

담뱃값 인상은 금연에 별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당장은 소비자들이 담배 구매를 끊게 되지만 곧 흡연율이 회복된다는 얘기다. KT&G 중앙연구원이 2005년 내놓은 '담배가격인상 효과분석' 자료에서는 "담뱃값 인상 후 초기에는 담배 구매에 무척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5개월 정도 지나면 평균 소비량 수준으로 거의 회복된다"고 분석했다.

공식적인 담배 판매 집계에 잡히지 않는 담배 밀수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회원 10만여 명을 보유한 애연가 온라인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측은 최근 "그리스가 지난해 초 담뱃값을 25% 인상하자 밀수 및 가짜 담배 시장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되면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담뱃값 인상 취지는 무색해진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 이미 우리나라 관세청은 113억원어치 밀수 담배를 적발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세계 담배 유통량의 10%가 밀수 및 가짜 담배다. 직장인 김모(34) 씨는 "담뱃값이 비싸지면 필리핀 등 값싼 동남아시아 담배를 구해 피우겠다. 지금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센' 금연정책에 거꾸로 가는 '약한' 담배 경고문

거부감을 줄인 '순한' 금연정책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와 KT&G는 담배 제품명 및 설명 문구와 관련 규제책을 마련했다. '순' '라이트' 등 담배가 덜 해롭다고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는 담배 제품명이 최근 변경됐다. 에쎄 '순'은 에쎄 '수'로, 타임 '라이트'는 타임 '미드'로 바뀌었다. 또 '멘솔' '모히또' '체리' '아로마' 등 담배에 향을 내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이나 식품 명칭을 포장이나 광고에 표시할 수 없도록 했다. WHO(세계보건기구)가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통해 오도 문구의 사용 제한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지는 "애교수준이다. 장난 치냐?"는 반응이 나온다. WHO는 담뱃갑 면적 30% 이상 크기의 경고문을 넣을 것과 경고 사진 포함도 권고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세계 40여 나라가 담배 포장에 경고 사진을 넣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는 호주에 이어 모든 담배 포장에 상표를 빼고 경고문만 넣기로 했다. WHO는 각국 담배의 '경고 디자인' 수준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방글라데시와 함께 공동 77위에 머물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센' 담배 경고문 표시에 소극적인 전력을 갖고 있다. 1964년 미국 공중위생국이 '흡연과 건강'이라는 제목의 일명 '테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담배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곧장 미국 의회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담배에 '주의: 흡연은 당신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지만 정부와 당시 전매청은 미적거렸다. 결국 13년이 지난 1976년에서야 WHO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정부가 권유한 끝에 전매청은 국산 담배에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은 삼갑시다'라는 문구를 넣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원안은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원안은 담배의 해로움을 강조했지만 수정된 문구는 '적당히 피우라'는 뉘앙스였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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