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과 멘토] 같은 지붕-같은 회사,포스코 이상득·이대형 부자

입력 2013-03-15 07:14:07

포스코 파이넥스 기술부 이상득(57) 씨와 행정섭외그룹 이대형(27) 씨는 직장 선후배이기에 앞서 부자관계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포항
포스코 파이넥스 기술부 이상득(57) 씨와 행정섭외그룹 이대형(27) 씨는 직장 선후배이기에 앞서 부자관계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포항'박승혁기자

아버지이자 선배, 아들이자 후배.

포스코 파이넥스 기술부 이상득(57) 씨와 행정섭외그룹 이대형(27) 씨의 관계다. 아버지는 30년을, 아들은 1년 남짓 근무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아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자부심과 어려움을 자주 이야기한다. 자식이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버지의 조언은 조금씩 늘어간다. "아직 어린애인 줄 아시나봐요." 아들이 투정을 부린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가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가끔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당기고 싶어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조금씩 밀고 싶어한다. 때론 친근하지만 때론 서먹한 아버지와 아들. 같은 직장에 둥지를 튼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월급, 5만원 vs 300만원

아버지=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먹고살기 위해 포스코에 입사했다. 당시 첫 월급이 5만원이었는데, 공무원과 비교해도 2배는 많은 액수였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황색군대라고 불릴 만큼 엄격한 규율 속에 일했다. 고로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당시 집진기가 없어 일을 마친 뒤 얼굴을 보면 광부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기술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언제나 산업현장의 선봉에 섰다. 지금도 산업현장을 뛰며 기술자로서 보람과 책임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아들=아버지의 땀으로 만든 울타리에서 컸다. 풍족하게 살았고 대학도 진학했다. 대학 3학년 무렵, 아버지가 뜬금없이 포스코 고졸 공채에 응시하라고 권했다. 고민했다. 대학 나와서 직장을 제대로 잡지 못할 바에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생각에 도전했고, 합격했다. 첫 월급으로 300만원 정도 받았다. 고졸 사원인데도 현장으로 가지 않고 사무직으로 왔다. 행정섭외그룹으로 발령받아 녹화부문(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유대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기술자는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포스코 입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회사다. 그리고 나를 기술자로 성장시켰다. 현장을 뛰느라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하지만 기술분야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요즘은 틈틈이 중국어 공부를 하는데 나이 때문인지 진도가 신통찮다.

아들=아버지의 직장이었지만, 포스코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입사하니까 주변에서 반응이 왔다. "부럽다, 잘됐다"는 등의 격려를 보면 참 좋은 직장에 들어온 것 같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어 기뻤다. 어린 시절 늘 지쳐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놀아주지 않는 것을 미워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 감사하다.

아버지=아들의 학업을 포기하고 포스코 입사를 권유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가끔 후회가 되고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나도 대학을 다니지 못해 아쉬움이 컸는데, 아들도 비슷한 상황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아들=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아버지는 길을 알려줬을 뿐이다. 아버지꺼서 미안하지 않도록 야간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앞으로의 인생설계

아버지=퇴직까지 3년 남았다. 아들과 함께 근무하는 동안 슬기롭게 사회 생활하는 방법을 모두 알려주고 싶다. 그간 열심히 일해 얻은 전문기술을 계속 살리고 싶지만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다. 포스코가 후배들을 위해 도입한 용퇴제도(퇴직 몇 년 앞둔 선배들이 미리 직책을 내려놓는 제도)가 있어 업무에 조금 더 빨리 손을 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현장에서 더 남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무탈하게 퇴직했으면 한다.

아들=아버지가 퇴직하는 날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큰 자부심을 갖고 정말 성실하게 일하셨다. 나는 맡은 업무(조경)의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 주변에 관련학과가 없어 고민이지만 다양한 독서와 현장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익혀나갈 생각이다. 5년 정도는 앞만 바라보고 달릴 계획이다.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외국어 공부는 말 그대로 공부지만, 난 제대로 놀기 위한 공부다. 외국에 놀러 가서 근사하게 말하기 위한 공부다. 이런 것도 아버지와 다른 사고의 접근이지만, 결국은 이것도 자기계발 아닌가. 아버지 세대들은 매사에 너무 목적의식을 두는 것 같다.

아버지=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젊은 사람들은 공부도 즐기며 하는 것 같다. 우리 세대들은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가난을 극복할 수 있어 매사 신중하고 무겁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환경이 다르니 우리 세대와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하다. 그래도 눈치껏 부모 세대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게 센스 아니겠는가. 나도 아들을 이해하려는 센스를 발휘하겠다.

◆근무하면서 애환

아버지=젊어서는 밤낮없이 일하는 게 힘들었다. 나이를 먹으니 바쁜 회사생활로 공부를 많이 못 했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후배들은 마음껏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들=대학을 중퇴했지만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녹화관리다. 너무 생소하다. 오로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 처음 접하는 것이라 어려움이 많지만 5년 후, 10년 후에는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믿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 아버지 말씀대로 직장생활에 최대한 충실할 생각이다.

아버지=오히려 백지상태에서 배우는 게 낫다. 어쭙잖은 지식은 위험하다. 이번 기회에 녹화관련 분야에 대해 열심히 배워 최고의 전문가가 됐으면 한다.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유혹에 빠지지 말고 직장에 충실하라. 어렵게 입사한 만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최고가 돼 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자신이 가진 것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 편협된 사고는 꼭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 다양성을 근간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선후배의 의견을 잘 듣고 마음에 새겨야 직장생활이 편하다.

아들=아버지의 보수적 사고가 나와 맞지 않다. 이를테면 나는 어차피 독립할 거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인데, 아버지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결혼 전까지는 함께 살기를 원한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함께 살기 싫어 그런가 보다며 결과만 판단하는데, 나는 이런 결과가 도출된 과정을 살펴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무엇보다 한 직장을 37년 넘게 다니는 성실함과 끊임없는 학구열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릴 듣고 싶다.

아버지=철부지인 줄만 알았는데 마음 씀씀이가 어른스럽다. 그간 대화가 많이 부족했고 아들의 마음을 세심히 읽지 못해 아쉽다. 앞으로 아들과 가슴을 맞대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포항'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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