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옥천 향수 100리 길

입력 2013-03-14 14:17:19

곳곳에 인삼밭·포도밭·실개천, 어린시절 추억 떠올라

2011년 5월 늦은 봄날 토요일 아침, 대전으로 향했다. 생소한 길이라 가기 전에 코스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길은 힘들고 멀었다. 그래서 많이 헤맸다. 휴일이라 그런지 라이딩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날 라이딩은 '향수' 시인 정지용 선생의 생가에서 시작해 대청호반을 따라 이어졌다. 생가(한옥)는 잘 보존되어 있었고 '향수' 시비가 있었다. 시 '향수'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잠시, 고 육영수 여사 생가에 도착했다. '와우!' 관광객들이 많았다. 어릴 적 고인이 살았던 곳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생전 TV에서 보았던 육 여사의 모습도 잠시 떠올려 봤다.

'향수길'이라 명명된 길은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길은 예쁘고 두루두루 둘러볼 곳도 많았다. 향수길은 자그만치 100리 길. 라이딩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곳곳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고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달리는 곳곳에는 인삼밭, 포도밭, 배밭 등이 있었는데, 그 길이 왜 '향수길'이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걷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가는 도중 실개천이 있었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작은 강이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많은 사람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문득 어릴 적 남동생과 대소쿠리를 가지고 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금강휴게소 쪽으로 달리다 보니 '1박2일 코스'와 '향수 100리 길 코스' 등 이정표가 나왔다. 우리는 향수 100리 길 코스를 택했다. 내가 생각했던 어릴 적 향수가 깃든 울퉁불퉁한 시골길이 아닌 시멘트길이어서 다소 실망했지만 금강을 따라 흐르는 강물과 주위 경관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눈앞에 '금강휴게소'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아침에 고속버스에서 본 그 휴게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낚시하는 사람들, 수영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오늘 달려온 길은 내 어릴 적 뛰어놀던 향수가 깃든 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개발보다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대전 쪽으로 갈 때는 폐도로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지만 이전에는 이 길을 이용했다고 했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고, 특히 자전거 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에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는 사람들, 즐거워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또 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일행도 그들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이래서 여행은 좋은 것 같다. 못할 것 같은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부끄러워 차마 못 하는 것들도 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해진 코스보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이런 코스를 여행하면 더 새롭고 재미있는 여행길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밤 늦게 대전에 도착해 대구행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 풋풋한 향수 내음이 났던 그날 여행은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 '향수'를 불러 본다.

'넓은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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