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예방 대책 헛구호 사안별 분석
경북 경산의 고교 1학년 학생 A(15) 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두고 그동안 교육 당국이 내놓은 각종 학교폭력 대책이 수박 겉핥기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실시한 정서행동발달선별검사, 학교폭력 실태조사 등으로도 A군을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고, 교내에 설치한 CCTV도 무용지물이었다. 교육 당국의 학교폭력 대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A군의 사례에 비춰 살펴봤다.
① 정서행동발달선별검사 사후 관리 부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A군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실시된 정서행동발달선별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적이 있었으나 학교폭력 관련 상담 대상에서 제외됐다. 2차 정밀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오자 학교 측이 그냥 넘어간 것이다. 이 같은 검사 처리 내용은 최근 진학한 고교에도 전달되지 않았다. 검사 후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진행된 이 검사에서 경북 초'중'고교 학생 32만5천211명 가운데 20.97%(6만8천206명)가 관심군으로 분류됐다. A군 사례를 볼 때 7만여 명에 이르는 관심군 학생들이 심층 상담 등 제대로 된 관리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관심군 학생에 대한 상담 활동이나 관리는 기본적으로 각 학교의 소관"이라며 "상급 학교에 이 자료를 넘겨주라는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학생 개인정보 보호라는 문제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② 학교폭력 실태조사 실효성 의문
지난해 2차례에 걸쳐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했음에도 A군의 피해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A군이 다닌 중학교 경우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전체 학생 888명 중 616명이 참여했고 피해 응답 학생 수는 47명이었으나 이 기간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심의 건수는 단 1건에 그쳤다. A군이 유서에서 2011년부터 지금까지 5명으로부터 폭행, 금품 갈취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도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 측은 이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산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은 "학교에서 폭력 관련 조사를 해도 학생 대부분은 마음속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보복이나 후환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③ 학교폭력 예방 교육 부족
도교육청은 지난해 4월 영주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뒤 초'중'고교 교직원 2만5천여 명을 대상으로 상담 연수 실시, 학교별 학교폭력 신고함 설치 등 각종 학교폭력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부족했다. 학교 정보사이트 '학교 알리미'에 따르면 경북의 지난해 1학기 학교폭력 예방 교육 시간은 전국 평균(26.8시간)보다 8.2시간이나 모자란 18.6시간에 그쳤다.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0위에 불과하다.
학교폭력 관련 상담'교육을 하고 있는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A군이 다닌 학교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곳"이라며 "교육 당국에서 대책을 쏟아내도 학교 현장에선 여전히 이 문제에 둔감하다"고 비판했다.
④ 학교폭력 근절 외친 교과부 장관의 방문도 허사
공교롭게도 A군이 다니며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중학교는 지난해 2월 17일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진행한 '필통(必通) 톡(Talk)'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곳. 이 학교를 시작으로 3월 말까지 전국 9개 도시를 돌며 학부모,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찾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피해를 입고 있었을 A군에게 도움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다.
전교조 경북지부 이용기 지부장은 "교과부 장관이 학교폭력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가장 먼저 찾은 학교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책들의 실효성이 없다는 증거"라며 "도교육청도 형식적인 상담 일지 작성에 열을 올리고 경찰을 강사로 불러 처벌만 운운하는 학생 교육을 시킬 게 아니라 '경쟁과 학력'에서 '배려와 인권'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⑤ CCTV도 근본 대책 못돼
A군 사례를 두고 교내 CCTV 운용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A군이 다녔던 중학교에 설치된 CCTV는 모두 19대였으나 학교 안 복도와 운동장 등에 설치됐을 뿐, 정작 A군이 유서에서 밝힌 것처럼 주로 폭행을 당했다고 한 화장실과 교실 등에는 CCTV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CCTV 설치 확대와 성능 개선 등이 학교폭력을 뿌리뽑을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경북 한 중학교의 생활지도 교사는 "A군이 이야기한 화장실만 해도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하는 곳이기도 해 CCTV 설치를 확대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며 "그보다 어떻게 하면 학생 간, 학생과 교사 간 신뢰를 형성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고 했다.
⑥교사들의 책임의식 부재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학교에서 상담 활동을 한 적이 있다는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보건'상담교사 사이에서 누가 학교폭력 조사와 사후 관리를 해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일을 떠미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며 "교사들이 왜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해야 하는지부터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현실적으로 학생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A군이 다녔던 중학교의 한 교사는 "수업과 잡무를 챙기다 보면 학생들을 하나하나 돌보기가 쉽지 않다"며 "학생 개인별 성격이나 특성에 맞는 상담과 지도를 할 수 있는 전담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고 했다.
경산교육지원청 이재현 교육지원과장은 "성적과 출세에만 관심을 쏟는 사회 분위기와 교사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교사가 사명감을 갖고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외쳐 봐야 누가 따르겠느냐"고 했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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