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에 '무죄'…억울한 간첩 혐의 벗었다

입력 2013-03-14 09:54:33

3살 때 떠난 부친이 조총련 미안하다며 준 백만엔 논란…교직서 쫓겨나고

1984년 2월 23일 매일신문 11면에 실렸던 정영범 씨 관련 기사. 정 씨는 이후 29년 만에 간첩 누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1984년 2월 23일 매일신문 11면에 실렸던 정영범 씨 관련 기사. 정 씨는 이후 29년 만에 간첩 누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피고인은 무죄.'

판결문의 주문에 또렷이 적힌 글자다. 이 '여섯 자'를 판결문에 새기는 데 29년이나 걸렸다. 정영범(75'대구 남구 봉덕1동) 씨는 마침내 '간첩죄'를 벗었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부장판사 윤성원)는 지난달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정 씨가 재기한 재심청구소송에서 정 씨에게 선고됐던 '금품수수죄' 부분을 파기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국가보안법에서 말하는 금품수수죄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아야 성립되는 범죄다"며 "피고인은 아버지에게서 부자지간의 정으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국가의 존립, 안전 등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3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뒤 42년 만에 상봉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뒷바라지를 못한 아내와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한 마음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로 돈을 주고 아내를 위해 금반지를 피고인에게 줬을 가능성이 있다"며 "또 피고인이 받은 돈의 액수가 공작금으로 보기에는 적은 액수인 점 등을 종합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덧붙였다.

정 씨가 간첩 누명을 쓰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다. 1983년 8월, 일본에서 조총련 소속이었던 아버지를 40여 년 만에 만났다가 100만엔과 금반지를 받은 혐의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붙잡힌 것.

정 씨는 84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정 씨는 상고했고 85년 1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시켰다. 서울고법은 그해 5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간첩 혐의는 벗지 못했다. 공소사실 중 잠입 및 간첩과 관련해선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금품수수죄는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반공법을 위반한 '간첩'인 건 똑같았다.

검사와 정 씨는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85년 12월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정 씨는 85년 6월 대법원의 국보법 위반 확정 판결로 28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강제퇴직당했고, 이후 29년간 '간첩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살아야 했다. 5공화국이 끝나고 88년 6공 때 탄원서를 내는 등 누명을 벗으려 노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정 씨는 서울고법에 다시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금품수수와 관련해 재심개시결정을 받은 뒤 지난달 마침내 무죄 선고를 받아냈다. 이제야 '간첩 누명'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무려 29년 만이다.

정 씨는 "늦게나마 모든 게 바로잡히고 다 정리돼 감사하다. 84년 당시 초교 교사가 낀 간첩단 사건의 대대적인 발표와 언론 보도로 지금까지도 다들 (내가) 간첩인 줄 알고 있다"며 "고문자 등 다 용서하고 다 잊고 지내려고 노력하며 지내다가 '진실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연락이 와서 '조작 사건 같은데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자식들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다 정리하자'고 권해 고민 끝에 다시 소송하게 됐다"고 했다.

아들 정대영(45) 씨는 "고교 입학을 앞뒀던 83년 12월 강제 연행된 뒤 두 달 동안 행방을 전혀 몰랐다가 매일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아버지 소식을 알게 됐다. 안기부에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2개월 동안 각종 폭행과 고문을 당하셨다"며 "아버지가 간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당시 분위기에선 아무도 그 얘기를 할 수 없어 지금까지도 미안해하고 계신 분들의 마음의 짐을 벗게 해주기 위해, 이를 통해 옛 지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소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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