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랑 대구자랑] <11>약전골목(약령시)

입력 2013-03-14 07:47:04

조선 팔도에 한약재 공급…살려야 할 한방 문화 요람

3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구 약전골목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한방 문화의 요람이자 대구를 대표하는 자랑거리다. 학생들이 약전골목에 있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견학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3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구 약전골목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한방 문화의 요람이자 대구를 대표하는 자랑거리다. 학생들이 약전골목에 있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견학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를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장소는 어디일까? 여러 곳이 있겠지만 대구 중구 약전골목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의학을 접해보지 않은 미국, 유럽 관광객들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관광객들도 약령시한의약박물관 등 약전골목을 걸으며 대구의 향기에 흠뻑 젖고 있는 것.

◆세대를 이어주는 약전골목

최근 매일신문 '주간매일'에 실린 '대구약령시의 재발견' 기사를 본 김천의 한 독자가 신문사로 글을 보내왔다. 약전골목이 어떤 존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줘 흥미롭다. "약전골목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는 60대 초반입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약전골목을 찾아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달여주시던 한약의 효과는 지금의 나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고 있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 주는 듯 구수한 한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대구 중구 약전골목은 지하철 반월당역 인근 남성로 약 630m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이 골목과 함께 약전골목은 좀 더 범위가 확장된다. 남성로와 동성로3가, 계산1'2가, 수동, 종로2가, 장관동, 상서동 일부를 포함하는 거리를 일컫는 것. 이곳은 '약령시한의약박물관'과 한의원, 한약 관계 점포 등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제일교회, 교남YMCA 등이 있는 등 대구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공간이다.

◆민족혼 살아 숨 쉬는 약령시

대구시가 최근 펴낸 '대구경관자원 52선'에 따르면 대구약령시에 대한 두 가지 설(說)이 있다. 조정에 필요한 약재를 수집하기 위해 1658년에 설치되었다는 설과 중국 또는 일본 무역품으로서의 한약재를 수집하기 위해 설치됐다는 설이 있는 것.

조선 효종 연간부터 경상감영 서편 객사 주변(지금의 중부경찰서 북편 일대)에서 정해진 개시일 동안 약령시가 열렸다. 도시와 약령시의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1907년 약령시는 지금의 약전골목으로 이전했다.

약령시에 대한 일제의 탄압도 심했다. 1914년 일본 제국주의가 발동한 '조선시장 규칙'에 의해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이에 대구의 유력한 한약종상 약익순(梁翼淳)이 주동이 되어 1923년 '약령시진흥동맹회'를 조직해 부흥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연락의 거점이 되어 일제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다가 1941년 약령시가 폐쇄됐다. 1978년부터 대구한약협회 등이 대구약령시 부활운동을 벌였고 한약재 상설시장이 1988년 보건사회부로부터 전통 한약시장으로 지정받았다.

◆웰빙'소통의 공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올해 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5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약전골목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건강한 소풍', 슬로건은 '약령시로 건강한 바람 쐬러 오이소!'.

매년 약전골목에서 열리는 한방문화축제는 조선시대 약령시 개장행사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대구약령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약령시인데다 장소도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자원으로 키울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의 영남대로와 이상화'서상돈 고택, 계산성당, 청라언덕으로 이어지는 도심 투어가 인기를 끌면서 약령시를 다녀가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축제엔 26만여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축제장에 가면 '한약방 체험장'에서 약 썰기, 약 갈기, 저울 달기, 약첩 싸기 등 한방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체험도 할 수 있다. '한방 먹거리 마당'에서는 동의보감 북 아트 체험, 약초 꽃 핸드 페인팅, 약초 꽃 페이스 페인팅, 약초 꽃 네일아트, 약 찻잔 예쁘게 빚기, 한방 팩 체험 등이 마련돼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기로에 선 약전골목

2005년 한방특구로 지정된 대구약령시는 3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한방 문화의 요람이다. 그러나 급속한 상권 위축과 함께 2000년을 기점으로 점차 쇠퇴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전골목 자연 소멸 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기는 주변 환경 변화와 보존 대책의 부재 때문. 약전골목 인근에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들어서면서 인근 건물의 임대료가 올랐다. 영세 한약업소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약전골목을 떠나고 있다. 2009년 225곳이었던 한약 관련 점포는 최근 17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 전성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영세한 한약업소가 문을 닫고 떠난 자리에는 주차장과 커피전문점, 식당, 미용소 등이 들어서고 있다. 이대로 가면 10년 내에 대구 약전골목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의 문화유산은 한 번 없어지면 복원하기 어려운 법이다.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한 대구의 명소인 약전골목이란 문화유산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사라지기 전에 잘 보전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이 많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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