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중증 간경화 김미철 씨

입력 2013-03-13 07:27:15

김미철 씨의 아내 정인숙 씨가 김 씨의 발과 다리에 로션을 발라주고 있다. 김 씨의 발과 다리는 간경화로 인한 부종으로 항상 붓고 튼 상태라 자주 로션을 발라주면서 트지 않게 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김미철 씨의 아내 정인숙 씨가 김 씨의 발과 다리에 로션을 발라주고 있다. 김 씨의 발과 다리는 간경화로 인한 부종으로 항상 붓고 튼 상태라 자주 로션을 발라주면서 트지 않게 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1일 오후 2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김미철(53'경남 합천군 적중면) 씨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병실에 들어왔다. 몸을 움직여야 이식받은 간이 자리를 잡고 수술 경과도 좋아진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 안을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김 씨는 걸을 때마다 '병이 빨리 나아야지'하면서도 병원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면 답답해진다. 김 씨는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자신을 간호하는 아내 정인숙(50) 씨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김 씨는 서울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씨의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1962년쯤 제대한 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했다. 장남으로서 가계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부담에 김 씨는 18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채소 장수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김 씨는 20살이 되던 해, 부산에 사는 작은아버지한테 내려가 작은아버지의 옷가게 매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됐다.

"받은 월급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저는 용돈을 받아 썼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면서 상심이 크셔 '나'라도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그러던 중 비보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돈 많이 벌어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려던 김 씨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초라한 꼴로 돌아가기가 싫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김 씨는 이때부터 서울 본가와의 연락을 끊었다.

작은아버지를 떠나 합천에서 집수리, 보일러 시공, 수도 수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막노동뿐이라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지금도 아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바래다 드리지도 못한 저 자신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더 슬픈 건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 때문에라도 열심히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이유

아내 정 씨는 10년 전 교회에서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김 씨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두 아이를 키우며 혼자 식당을 꾸려가던 정 씨에게 마음이 자꾸 쓰였다. 결국 김 씨는 2003년 '더는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프러포즈로 정 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본가와 연락이 끊긴 데다가 주민등록증도 분실한 상태여서 주민등록이 말소돼 정 씨와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던 것.

"사실, 제 의지가 있다면 주민등록을 다시 복구할 수 있었어요. 20년 전에는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면 벌금을 내야 했고, 주민등록 회복을 위해 고향의 동사무소로 가야 했는데 벌금을 낼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소된 채로 20년 넘게 살았고 아내와 10년 동안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김 씨에게 주민등록을 회복시켜야 할 이유가 생겼다. 2010년 겨울 탈장 증세로 병원에 갔던 김 씨는 중증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간 이식밖에 방법이 없었던 김 씨에게는 이식 비용을 마련할 만한 돈이 없었다. 긴급의료지원비를 신청하려면 주민등록을 살려야 했다. 결국 겨우 주민등록을 회복시켜 긴급의료지원비 지원과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김 씨의 간경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김 씨는 집 수리공 일을 하면서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면 김 씨는 술로 시름을 풀곤 했다. 결국 스트레스와 술이 김 씨를 간경화로 몰고 간 것이다.

아내 정 씨는 "결혼 후 아프기 전까지 자주 피곤하다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렇게 큰 병이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주민등록 말소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던 적이 많아 병을 제때 발견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김 씨는 자칫 간 이식을 받지 못할 뻔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위해서는 예치금으로 2천만원을 먼저 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김 씨 부부는 돈을 빌릴 만한 곳과 자신들이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모두 그러모았지만 겨우 500여만원 정도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치료를 포기하려던 찰나, 김 씨에게 간을 이식해 줄 기증자가 나타났고, 병원에서는 고민 끝에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되지 않겠나"며 수술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김 씨의 회복 속도도 빠른 편이다.

문제는 남은 병원비다. 마련한 500만원은 이미 병원에 냈다. 정 씨가 다니던 교회의 모금과 정 씨의 친정 등에서 빌린 돈을 합쳐도 5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김 씨의 누나와 남동생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연락이 끊긴 뒤 간 이식을 위해 다시 연락을 시도해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사정은 김 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 씨가 아프기 전에는 보험설계사와 요양보호사로 돈을 벌던 정 씨는 김 씨를 간호하면서 이 일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제 자식들도 전문대학 졸업 후 자기가 할 일 찾아 열심히 살기 시작해 '아, 이제 우리 부부만 여생 잘 정리하면서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간경화라고 하니 앞이 아득해지더군요.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아직도 제 인생에 해가 뜨려면 멀었나 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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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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