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로 산 32년…"연기 위해 두 달간 거지 체험도 했죠"

입력 2013-03-13 07:38:19

'왕초 품바' 배우 이계준 씨

왕초 품바 이계준, 각시 품바 최영주 씨가 연극
왕초 품바 이계준, 각시 품바 최영주 씨가 연극 '왕초 품바' 대구공연이 계속되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소극장 객석에서 여유 있는 포즈를 취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품바 32년, 공연횟수 1천500여 회.'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한창 공연 중인 '왕초 품바'의 각설이 명품 배우, 이계준(53)에게 거지 역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1978년 마당극 전문 민예극단에 들어가 1979년 '배뱅잇굿'에서 각설이 역할로 시작, 1981년부터 품바 전문배우로 32년 동안 전국 곳곳으로 돌며 그 명성을 쌓았다.

이 길로 들어선 사연도 기구한 편이다. 소리꾼이자 한량으로 산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품바를 시작하자 어머니와 집안 형제들은 10년 가까이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 어머니는 김삿갓처럼 정처 없이 돌아다닌 아버지로 말미암은 마음고생을 아들에까지 대를 이어 해야 한다는 데 반대했고, 형제들은 고작 '거지 하려고 배우 하느냐? 호적에서 파내겠다'며 품바 인생이 시작된 그를 부정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집안 사람들은 이계준이 1992년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 그를 인정했다.

이계준의 연기 철학과 고집은 모진 바람이 불어도 굳건했다. 그는 거지 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충남 부여터미널 인근 시장에서 60일 동안 거지 체험에 나섰다. 실제 거지와 똑같이 생활했다. 그 속에서 거지들 간에도 묘한 알력이 있으며, 거지를 뜯어먹고 사는 깡패 거지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지 연기가 탄력이 붙을 즈음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지방 순회 공연을 하던 어느 날, 공연 10분 전에 볼 일(?)이 급해, 인근 동네 화장실을 찾았다. 이를 본 몇몇 동네 아이들이 '얘들아! 거지가 화장실에 들어갔다'며 10여 명이 모여 돌팔매질을 하는 바람에 온몸으로 돌을 막아야 했고, 공연 시작도 15분이나 늦어지는 불상사가 생긴 것. 품바 배우를 찾아나선 스태프들이 인근 화장실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돌을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간신히 그를 구출했다.

각시 품바로 관객들과 소통하며, 거지 깡통에 적선금을 그러모으는 최영주(33)는 2010년부터 왕초 품바 이계준과 함께 부부 품바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500회가량 함께 공연하다 보니, 20년 차이가 나는 실제 부부인 줄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정도로 환상호흡을 자랑한다.

연극 한 편을 보고 감흥을 받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무작정 극단을 찾아가 연기를 시작한 그는 "왕초 품바가 극을 잘 이끌어주니, 옆에서 많이 보고 배웠다"며 "거지를 소재로 한 연극이지만 이 속에는 나라 사랑과 휴머니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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