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경칩이 지나자 날씨가 달라졌다. 봄이 어느새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엉거주춤 버티고 섰던 겨울 끝자락도 별 수 없이 꼬리를 감춘 모양이다. 봄을 두고 겨울이 우길 일이던가. 얼었던 흙이 풀리면서 꽃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꽃의 사회성에 대해 얘기해 볼까? 봄꽃은 대체로 무리지어 핀다. 개나리가 그러하고 진달래, 벚꽃, 복사꽃이 그러하다. 무리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태생적으로 그것들은 흩어지면 불안하다. 서로 기대어가며 무리를 지어야 보기에도 좋고 편안하다.
매화는 다르다. 매화는 선비의 꽃이다. 이른 봄 제일 먼저 정자 한쪽에 호젓이 피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선비의 맑고 깨끗한 정신을 지킨다. 향기는 어떠한가. 매화 향기는 유난히 멀리까지 간다. 옛 선비들은 깊은 밤 동구 밖 흰 눈 속에서도 은은한 매화향이 느껴진다고 노래했다. 매화의 개별성이다.
그러나 시류에 따라 꽃의 사회성이 획일화됐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일 것이다. 관광 수입을 위해 철 따라 꽃들이 상품으로 동원되면서 모든 꽃들이 집단화'평준화되고 말았다. 꽃들은 다투어 개량된 자태와 향기로 호객 행위에 나서고 있다. 상향 평준이 아니라 하향 평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구 밖 정자 옆에 홀로 핀 매화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집단으로 가꾸어 놓은 매화농원으로 달려가 매실 상품에 혼을 빼앗길 뿐이다. 구매를 위한 그들의 동선(動線)도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 이제 매화는 꽃보다 상품이다.
가이드가 나누어주는 안내서에는 친절하게도 매화(梅)가 지조와 절개의 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송나라의 임포(林浦)는 매화를 처(妻)로 삼고, 학을 자식(子)으로 여기며 청아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신흠(申欽)은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춥고 가난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노래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조와 절개를 사랑한 선비에는 관심이 없다. 선비에게 선택된 매화라는 상품을 주목할 뿐이다. 그들은 잘 포장된 매실액과 매실 장아찌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선비들이 매화를 단아한 자태와 향으로 소통했다면, 현대인은 완성된 매실 상품을 통해 매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매화는 돈으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오늘도 관광버스는 매화객들로 떠들썩하다. 남자들은 매실주로 얼굴이 붉어지고, 여자들은 손에 손에 매실 상품을 들고 있다. 매화는 어디에? 두리번거려도 매화는 없다. 임포와 신흠을 찾아 우리 곁을 떠났다.
小珍/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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