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개조한 건물에 악취 소음…콜레라로 서울서 5천여 명 숨져

입력 2013-03-11 07:00:10

제중원 개원 당시 생활 모습

개원 초기 제중원의 모습.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혼잡을 빚을까 봐 마당 바깥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개원 초기 제중원의 모습.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혼잡을 빚을까 봐 마당 바깥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대구읍성 남문 안에 처음 세운 제중원의 환경은 어떠했을까? 원래 이 건물은 옛날 머슴이 살던 집과 헛간을 개조한 듯한 임시 건물이었다. 게다가 높이 7m의 성벽 안쪽 가까이에 붙어 있어서 통풍도 잘 되지 않았다. 좁고 낮은 제종원의 천장 탓에 여름이면 사람들이 참기 어려울 만큼 더웠다. 대구의 폭염 속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존슨은 의료보고서에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비좁고 갑갑해서 여름에는 의사가 자기 건강의 위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는 곳이다." 남문안 선교기지는 주위에 민가가 밀집해 악취가 심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굴뚝에서 뿜어내는 매운 연기는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개 짖는 소리와 빨랫방망이 소리, 무당 굿하는 소리 등으로 소음도 대단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환자들과 씨름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말로만 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당시 대구읍성의 위생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글은 없지만 한양에 살던 사람들의 위생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 미뤄 짐작은 가능할 것이다. 서울대 의대 신동훈 교수와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경복궁 담장과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자리, 시청사 아래, 종묘 광장 아래 14~19세기 지층에서 회충과 편충, 간디스토마 등 각종 기생충 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복궁 담장 아래에선 흙 1g당 최고 165개, 다른 곳에서도 평균 35개의 알이 나왔다.

신 교수는 "사대문 안에서 기생충 알이 무더기로 나온 것은, 거리에 인분이 널려 있었고 대다수 사람이 기생충에 감염됐음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했다. 실학자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는 '성(城)에서 나오는 분뇨를 다 수거하지 못해 더러운 냄새가 길에 가득하며, 냇가 다리 옆 석축에는 인분이 달라붙어 큰 장마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비위생적인 생활 속에서 전염병도 잇따라 창궐했다. 당시 가장 무서운 전염병 중 하나는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일본식 음역인 호열자(虎列刺)로도 불렸는데,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뜻도 있다.

제중원이 문을 열던 해인 1899년 대한제국 정부는 '전염병 예방 규칙'을 통해 전염병을 법령에 따라 관리토록 했다. 앞서 1895년엔 '호열자병 예방 규칙' 등을 공포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만 콜레라로 5천여 명이 숨졌다.

호열자 예방 규칙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콜레라는 전염병 중에 사납고 모질기가 가장 심해 그것이 만연 유행할 때의 흉포하고 참학함은 세상 사람들이 익히 아는 바이다. 병독은 일종의 세균이 위주인데, 환자의 토사물 중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병의 만연을 예방하려면 토사물과 그 밖의 오염물에 소독법을 사용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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