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삼월, 어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를 찾은 신입생들, 방학 동안 또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 친구들로 학교가 분주해집니다. 여러 번 맞은 새 학기이지만, 매번 이맘때의 시간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와 달리, 설렘 뒤에 좀 무거운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번 학기가 저에게는 마지막인 까닭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곧 사회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이 '어른'이 될 기회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학이란 공간이 통상적으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공간으로 여겨지기에,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자연스레 '사회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뜻입니다.
오래전부터 할아버지 댁 거실 벽 한쪽에는 자랑스레 학사모를 쓴 아버지의 모습이 걸려 있습니다. 여전히 그렇지만, '졸업'은 한 가족에게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기도 했습니다. '졸업'은 당사자에겐 성인식이자 그 가족들에게는 한 자식의 출가였던 겁니다.
하지만 요즘 '졸업'은 예전의 무게나 감동이 훨씬 덜해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졸업식은 '성인식'도 자식의 '출가'도 의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 사는 친척들까지 졸업하는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졸업식은 풍경도 다소 형식적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어떤 친구는 취업 면접 때문에 졸업식에 가지 못한다고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졸업을 하더라도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다면서 졸업식에 가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이들에게 졸업은 단지 '수강 기간의 만료'의 의미 정도만 남아버린 겁니다.
이제 대학에서 중요하고 축하할 일은 '졸업'이 아니라, '취업'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학업을 얼마나 훌륭하게 마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 취직했느냐가 대학생활을 판단하는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을 구경하다 보니, '취업대학교'란 페이지가 눈에 띄더군요. '스펙 업'이나 '취업 뽀개기' 같은 사이트도 이미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취업'과 '대학'을 한데 묶어 이름으로 내건 정보 공유 사이트는 처음이었습니다. '취업대학교'란 말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솔깃하게 보이는 것이, 지금 대학과 취업의 상관관계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이제 대학은 취업 못 한 학생들에게 여전히 '유예 인간'처럼 머물러야 하고 머물 수밖에 없는 공간이고, 대학에서의 지난 세월은 벗어나야 할 '못난 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진한 아쉬움,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대학 생활에서 배웠던 것들에 대한 기억들과 낭만들은, 그래서 졸업 앞에 배부른 소리가 되고,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졸업을 맞는 이들에게 "졸업 축하해! 정말로!"라고 말할 수 없어서 서글펐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도 오지 않을 것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그럴 것 같아 더욱 서글퍼졌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 대다수에게 어쩌면 인생의 의미 있는 분기점이 사라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생이라는 활력 있고 아름다운 신분을 마무리 짓는 행사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그것은 곧 '낭만적인 학생'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경제가 어렵고 모두가 어렵다고 합니다. 대학의 낭만이 없었던 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별로 다른 게 아니라 합니다. 졸업 때 후련하지 못한 것은, 다 학교 생활을 못해서라 합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이 글은 결국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저의 넋두리인 셈입니다. 하지만 희망합니다. 저에게 올 만큼 빨리 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언제고 기억에 남을, 청춘의 '졸업'이 돌아오기를!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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