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대구 중구 북성로 일원에 '순종황제 어가길'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시각에 따라 다크 투어리즘을 판단하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어가길 복원이 제기된 건 지난 2009년으로 4년여에 불과하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가 싶다.
세계 인구의 60%가 도시에 살 만큼 도시의 경쟁력과 역할은 중요하다. 도시들은 명확한 타깃을 정해 맞춤형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맛 집이나 볼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도시들의 경쟁적 구시가지 마케팅도 그 이유이다. 대구읍성이 허물어지면서 만들어진 어가길 주변 구도심은 지난 100여 년 동안 개발되지 않은 까닭에 그 가능성이 기대된다. 근래 들어 당시의 매력적인 사회'문화적 콘텐츠를 연구하고 활용하려는 전문가와 학생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더구나 이곳은 항일과 친일의 흔적이 함께 녹아 있어 역사 교훈의 장소로도 자리매김되고 있다.
2009년 히로시마 현에 거주하는 일본인 교원들이 우리 지역의 교사단체 초청으로 대구 구도심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확인하는 어가길 투어도 하나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안내 표지석 하나 없는 길을 단체로 걷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인해 아쉽게도 행사를 접었다.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 운영해 온 '세이유'(Seuil'문턱)재단의 비행 청소년들에게 '걷기'를 통해 사회 복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처럼, 어가길이 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무엇'이기를 기대하는 바람은 엉뚱했던가.
다크 투어리즘은 어두운 과거, 역사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 현상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인다. 본래 이 용어는 2000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 말콤폴리(Malcolm Foley)와 존 레넌(John Lennon) 교수의 공저 제목에서 비롯됐다. 2008년 국립국어원이 다크 투어리즘을 대신할 우리말을 공모한 결과 '역사 교훈 여행'을 채택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식민지 역사, 재난, 감옥, 영웅의 죽음, 전쟁 등의 요소들은 국가, 개인, 시대에 따라 입장 차이가 많다. 그렇지만 다크 투어리즘에는 어떤 '틀'과 '기준'이 내포돼 있는 것 같다.
먼저 매스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 장소였던 댈러스, 링컨이 사망한 워싱턴 D.C. 포드극장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격당한 로레인모텔,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은 장소 등은 TV, 영화 등 미디어에 의해 비극적 개인의 죽음이 끊임없이 재생산된 사례이다. 다음으로 역사 교훈성을 살려 관광 상품으로 연결한 경우이다. 아우슈비츠, 난징 대학살, 킬링필드, 안네 플랑크의 집 등은 역사 교훈성을 토대로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되면서 다크 투어리즘이 된 케이스다. 인류의 교훈'교육적 요소가 관광 상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현대문명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반영된 사례도 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기술문명이 자연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있다. 또한 숭례문이 화마에 전소되는 과정은 우리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홀로코스트도 현대적 기술혁신이 대규모 학살 자행에 활용됐다는 측면에서 이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워털루전쟁 터는 매년 수많은 유럽인이 찾지만 공감할 수 있는 트라우마적 요소가 아니므로 다크 투어리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적 사례를 볼 때 다크 투어리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의 '발걸음'과 '공감'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볼 수 있다. 어가길 주변의 경관 개선 등의 하드웨어적 복원 사업은 향후 가미될 소프트웨어적 여러 요소와 잘 어울리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가길의 다크 투어리즘 여부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믿는다. 차제에 순종어가길 복원은 반일(反日)보다 극일(克日)에 방점을 찍는 출발점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권희/문화산업전문기업 (주)ATBT 대표 lgh@atb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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