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시아버님의 며느리 사랑 방식

입력 2013-03-07 14:10:34

전화벨이 울렸다. "집 앞인데 집에 있나?" 아버님 전화다.

미리 연락을 좀 주시고 오시면 뭐라도 준비해 맛있는 저녁밥을 해드릴 텐데 늘 며느리 애쓸까 봐 집 앞에 도착해서 전화하시는 아버님 방식의 며느리 사랑이다.

집 앞이라는 말에 대형마트에 가기도 바쁘고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식사를 차려드리기로 마음을 굳히고 두부 한 모를 썰어 된장찌개를 푸짐하게 끓이고 김치 한 쪽을 꺼내 머리만 자르고 찢어 드시도록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 남은 삼겹살을 구워 식탁에 냈더니 그런대로 푸짐한 식사가 되었다.

어머님께서 저세상으로 가신 뒤론 며느리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끼니를 해결하시는 아버님은 내가 차려드린 변변찮은 저녁을 너무 잘 먹었다며 좋아하신다.

이런 소리를 들은 며느리인 나는 죄인이 되어 디저트로 과일을 깎는데 소파에 아버님, 손자, 아들 3대가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만 쳐다보며 웃고 있다.

늘 정정하실 것 같았는데 아버님 손에는 지팡이가 친구처럼 동행하고 어느새 듬성듬성 남아 있는 머리카락마저 백발이 되어버렸다. 싱긋이 웃는 아버님,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보는 미소폰을 꺼내 외쳤다. "아부지 '김치…' 하셔요."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우리 가족 이야기' 코너에 '나의 결혼이야기'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스럽거나 힘들었던 에피소드, 결혼 과정과 결혼 후의 재미난 사연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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