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역도 명문가가 있다

입력 2013-03-06 07:16:56

인간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먹고사는 문제(경제)와 안전의 문제(국방)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은 4대 의무를 져야 하지만, 특히 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스스로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가 강제적으로라도 이행하게 한다. 경제와 안보야말로 국가의 큰 두 개의 수레바퀴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잘 나오고, 잘 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처럼 문민정부 이래 대통령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병역의무 이행이 주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국민의 기본적 의무를 소홀히 한 잘못을 이제 국민은 더는 용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위장전입,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부동산 계약금액의 축소는 20~30년 전에는 그야말로 관행적으로 국민 누구나 별 범죄의식 없이 저지르던 암묵적 비행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이제 용서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서구식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우리나라에도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선거에서, 정부 고위직 인사에서 본인 또는 자식의 병역이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높아지고 깐깐해진 국민의 눈에는 성이 차지 않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서민의 상실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 자식은 월남전에서 전사하고 또는 다쳐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데, 또는 혹한의 전방에서 손발이 얼어 터지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왔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하필이면 그들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데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투명하고 맑고 밝은 쪽으로 빠르게 개선되어 가고 있다. 병무행정에서도 1998년도를 기점으로 병역면탈범죄는 거의 소멸하였다. 간혹 유명인들이 브로커의 농간에 넘어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지만, 병역을 정당하게 이행하지 않고는 더는 네티즌들의 등쌀에 배겨낼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높은 출산율과 30~36개월의 긴 복무기간으로 인하여 입영대상자의 약 60%만이 현역으로 입영하였지만, 지금은 중증질병자, 장애인, 수형자, 북한이탈주민 등 극소수(약 1~2%)를 제외한 대부분 의무자들이 각종 병역의무를 이행하며 그 중 약 92%는 현역병으로 입영하고 있다. 주위의 거의 모든 친구들이 병역을 이행함에 따라, 병역을 감면받은 사람들은 그 절차가 합법적이고 정당하였음에도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즉, 병역이행이 자랑스러운 사회가 구현되어 가는 것이다.

병무청에서는 2004년도부터 3대 가족 남자 모두가 현역병으로 만기 전역한 경우 '병역명문가'로 지정하여 선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1천363가문이 지정되었으며, 대구경북에서는 167가문이 그 영예를 안았다. 올해부터는 여성의 군 지원 증가 추세 등을 고려해 남성이 없는 경우 여성 군 복무자를 포함하는 한편, 국민방위군 등 다양한 형태의 비군인 신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람도 병역명문가에 포함하기로 했다.

전투는 군인이 하는 것이지만, 전쟁은 모든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병역의 의무는 병역법에 따라 18세 이상의 남자에게만 있지만,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전쟁은 국가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국가 총체적 행위며 그 결과 또한 국가의 모든 부분과 모든 국민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전투는 하나뿐인 생명조차 바쳐야 하는 병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역사상 강대한 모든 국가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의 명예를 고양하고 또 예우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현존 최강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수많은 전사자를 내고 있음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물론 이제 우리 모든 젊은이들은 민주국가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병역의무를 자랑스럽게 이행하고 있다. 병역이행이 자랑스러운 사회구현은 북한의 핵무장을 날려 보낼 수 있는 강력한 국가안보의 초석이며 선진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반석이 된다.

김태춘/대구경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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