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학교 교정엔 언제나 기대와 설렘이 가득합니다. 봄방학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교문으로 드나들면서, 뜰의 홍매화, 목련…. 철쭉들이 꽃샘추위를 성토하며 햇살 모아 꽃잎을 빚느라 분주하고, 울타리 개나리 가지마다 노란 병아리들이 앞다투어 기어올라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들어댑니다. 한 학년씩 진급한 아이들도 새로운 교실에서 새 친구와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 새 교과서를 펴고 낯선 시간 속으로 떠나갑니다. 교실 유리창마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반짝이고, 운동장 한쪽에선 새로 입학한 꼬맹이들이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다니며 새로운 세상의 기후를 익힙니다.
그런데 해마다 4, 5월은 소아정신과가 가장 붐비는 시기라고 합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봄 풍경 속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지 채 한두 달도 지나지 않아 많은 아이가 새로운 학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공부에 좌절하여 정신병원으로 끌려다닌다는 것이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이 불행한 사태의 원인은 여러 맥락에서 다양하게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공부를 왜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부모나 교사나 아이들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그 생각들이 서로 어긋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6학년 교실에 들어가 '너희들, 공부는 왜 하니?'라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늘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닦달을 하면서 공부를 왜 하느냐?'라고 물으면 어쩌느냐는 표정이었는데, 그날 들은 대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중학교 배치고사를 잘 칠 수 있고, 이 고사 성적이 좋아야 중학교 공부를 잘 시작할 수 있으며, 이어서 좋은 고등학교 거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며,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월급을 많이 받아 예쁜 여자와 또는 돈 잘 버는 남자와 결혼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공부 목적에 이 현실적인 욕망만 뼈처럼 드러나 있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취직 걱정을 앞당겨 하는 듯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대답 중에서는, 이홍우 교수가 '교육의 목적과 관점'이라는 책에서 우화의 형식을 빌려 밝힌 견해가 그럴듯합니다. 아득한 옛날, 하늘나라의 상제가 인간 세상을 창조한 뒤 100명의 신하를 불러서 농사짓는 일, 고기 잡는 일, 대장장이 일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나씩 맡기면서 인간에게 그 일을 가르쳐 주고 오라고 명령하였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교육을 담당한 신하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자마자 되돌아와서, 다른 신하들에게는 인간들이 구름처럼 모여 배우려고 하는데 도대체 교육을 받으려고 하는 인간은 한 명도 없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답니다. 상재는, 교육이라는 것 또는 공부라는 것은 해 본 뒤에야 비로소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알게 되는데 이를 미리 설명할 수 없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몽매한 인간일지라도 교육을 직접 받아보면 그 가치를 알겠지 하는 심정으로,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번영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거짓말로 인간들을 꾀어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그 신하는 상제가 시키는 거짓말을 미끼로 던져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지요.
이 우화에 견주면, 우리 아이들은 결국 상제가 한 거짓말에 낚여 공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 공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홍우 교수의 설명을 이어보면, 대부분의 공부 내용은 관련된 현상을 보기 위한 개념적 수단이며 이 수단을 배워 인간과 자연에 관한 여러 현상을 깨달으며 살아가려고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인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지요. 빛의 성질을 '직, 반, 굴'로 암호화하고 외워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려는 공부보다 그 성질에 의해 설명되는 과학적 현상을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의 무역 활동을 공부한다면, 수입품과 수출품목을 달달 외우지만 말고 당시의 국제 역학 관계를 읽어내는 안목을 키우는 게 진짜 공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짜 공부를 통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현상을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중요한 일을 맡기면서 덤으로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를 선물한다는 논리입니다.
시험, 점수, 성적표, 석차, 입시, 경쟁, 친구와의 비교 등은 사실 공부라는 본질을 둘러싼 잡다한 부스러기들일 뿐입니다. 이런 부스러기들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되지요. 처음부터 상재의 거짓 미끼를 좇는 공부에 목매달게 하지 말고, 공부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공부를 즐기도록 가르치는 것이, 평생공부의 밑바탕을 마련하는 초등학교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새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 좋은 봄날, 이 땅의 모든 교실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모든 아이들의 공부가 정말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김동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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