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가족의 나라

입력 2013-03-04 10:30:54

'가족의 나라'라는 영화를 통하여 재일 교포인 양영희 감독을 처음 만났다. 현재는 한국 국적으로 한국을 자유로이 오가고 있는 그녀이지만 이전까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가 없었다.

2011년 일본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훤칠한 키 그리고 고운 얼굴 안으로 그늘진 음영이 투영되어 있었다. 당시 그녀와의 만남을 주선했던 분은 '똥파리'를 일본에 배급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번에 첫 영화 제작을 하려 한다며 양영희 씨가 이 영화의 감독으로서 참여하고 있으며 더불어 감독의 경험에서 채취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그렇게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 쪽 감시자 역할로 나를 캐스팅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고마운 말씀이셨지만 난 그때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당시 난 '똥파리'라는 영화로 인해 어지러움을 동반한 공황장애, 예고 없이 격하게 뒤바뀌는 감정의 조절 불능 등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양영희 감독은 자신 역시 최근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로 인해 북한으로 보내진 세 오빠, 그러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15년간 두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든 직후 북한으로의 입국 금지, 아버지의 죽음. 그 안에서 감독 스스로가 홀로 겪고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로 인한 깊은 공황 상태와 우울증. 이야기를 마친 감독은 나의 상황에 공감되는 지점을 느끼며 무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만약이라도 가능하다면 영화에 출연해 주기를 소망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녀와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고 그 서신에 담긴 감독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면서 영화의 참여를 수락했다. 2011년 뜨거운 햇살 아래 촬영된 양영희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 '가족의 나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난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이런 식으로 감정이 동요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지만 난 영화 상영 내내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슬프고 속이 상했던 것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속 시대적 상황에 응답할 수 없었던 가족들의 마음에 잠시 들어갔다 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마음에.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으로 종종 출장을 다니고 있다. 일본 영화인들과 관계를 맺다 보니 두 달에 한 번꼴로는 일본에 간다. 벌써 햇수로 4년째이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재일 교포들을 만났고 만났을 것이다. 일본 사회 안에서의 차별과 삐딱한 시선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교포들과 일본 사회에 속하고자 자신의 정체성을 함구한 채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교포들이 일본 사회 안에 혼재되어 있을 테니. 하지만 그 함구하던 사람들 역시 슬며시 다가와 자신의 태생을 말해주곤 한다. 동질감에 대한 귀띔일 수도, 완화된 정체성의 치부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대체로 편협한 조선의 역사와 재일 교포에 대해서 떠드는 쪽은 일본 정치인들이나 대외 관계에 예민한 일본의 소수이다. 일본에서 함께 자리한 재일 교포에게 한국인이냐? 자이니치냐? 맞냐? 아니냐? 등을 과도하게 따지며 비릿한 시선을 주는 사람들을 나는 현재까지 보지 못했다. 내가 만난 일본인들 대다수는 그저 서로 문화와 역사를 공유했고 서로 귀를 기울여줄 뿐이었다.

어려운 역사적 소용돌이의 문제이다.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 나가야 할지 개인적 고민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의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북한 사람이냐?라는 불편하고 부당한 질문을 받는 것 정도는 정리돼야 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를 뿌리로 둔 사람에게 그 뿌리에 대해 캐묻게 만드는 정도는. 서구의 교포들이 한국의 영웅으로 떠오를 적에 일본의 교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으로만 오롯이 시간을 때울 뿐이다. 이 부분을 우리는 오롯이 개인의 무게로만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일까. 머리가 무거워진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왜 있는 것일까.

양익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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