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를 보고 크게 고무된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기반의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테크노파크를 앞다투어 설립하였다. 지금까지 테크노파크는 지역 밀착형 산업을 발굴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운영 과정의 난맥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테크노파크 용도 폐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테크노파크가 설립 취지에 맞게 지역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루어(P.A. Gloor) 교수가 제안하는 '군집창조성'은 테크노파크의 역할을 잘 설명해 준다. 동물의 집단처럼 인간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군집'을 형성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종종 기막힌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테크노파크는 지역 기업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 생산의 트렌드를 따라 이동하여 군집을 형성하도록 기여했다. 군집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공동 혁신 네트워크'(COINS'Collaborative Innovation Networks)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고, 여기에서 테크노파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COINS는 지역에 있는 이해관계자들 간 원활한 협력을 통해서 기술 혁신을 이끌어내는 연결망으로, 지역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면서 각 부문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축이라 할 수 있다. 테크노파크는 COINS를 주도하는 허브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여 군집창조성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군집창조성이 발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루어 교수는 권력 버리기, 지식의 공유 문화,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의 3요소를 제시한다. 네트워크 내에서 권력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면 군집창조성이 발휘되기 어렵고 네트워크 자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이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 과정을 보더라도 명백하다. 초원의 풀을 초식동물이 뜯어먹고, 이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있고, 그 배설물은 초원의 거름으로 순환된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작동되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태계 자체의 파괴를 낳는 권력은 행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테크노파크에서 계속해서 불거지는 사건'사고를 보면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에서 발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 결정과 정책 지원이 특정 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지식과 혁신의 공유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테크노파크를 정상화하려면 이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카스텔(M. Castells)의 저서 '커뮤니케이션 파워'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우선 테크노파크의 네트워킹 권력을 모니터링하는 시민협의체가 필요하다. 네트워킹 권력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COINS에 포함될지를 결정하는 권한인데, 여기에 시민협의체가 참여함으로써 권력의 독점을 막을 수 있다. 둘째, 테크노파크의 일방향 네트워크 권력을 공유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역 산업 생태계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는 여기저기로 분절되어 있다. 이것은 COINS에서 군집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드러나 지역 자립에 기여하는 것을 차단해 왔다. 이런 네트워크 구조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신제품을 생산, 유통, 확산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네트워크 내에서 중개자의 위치에 있는 권력, 그리고 네트워크의 연결망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본의 권력이 독점적 지위를 갖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구'경북 지역은 지난 대선에서 80%가 넘는 압도적 비율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을 세웠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정부 조직 인선을 지켜보면 지역 출신이 오히려 홀대받고 있다. 새 정부가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 지역 출신을 오히려 역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됨으로써 '군집창조성'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자체마다 창조경제를 향한 보이지 않는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대구'경북도 테크노파크의 체질을 개선하고 COINS를 통해서 창조 산업의 메가 트렌드 물결에 앞장서야 한다.
박한우/영남대 언론정보학 교수(DIMF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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