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먼저다" 독립운동에 代 이은 문중들

입력 2013-03-01 09:33:39

3·1절…경북도, 유공자 10명 이상 마을 18곳 선정

김락은 독립운동가 3대를 지켜낸 여성 독립운동가다. 전통 양반 가문의 안주인이었던 김락은 열다섯 살에 안동 도산면 하계마을 이중업에게 시집을 갔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시아버지 이만도는 24일 동안 단식한 끝에 순국했다. 친정 집안은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떠났고, 남편과 두 아들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남편은 '파리장서'라 불리는 독립청원서를 발의하고, 강원도와 경북 지방 유림 대표의 서명을 받았다. 맏아들 이동흠은 대한광복회에 가담했다가 구속됐다.

3'1운동 당시 57세였던 김락도 예안면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일본군 수비대에 붙잡혔고, 취조를 받다가 결국 두 눈을 잃었다. 독립청원서를 갖고 중국으로 떠나던 남편은 갑자기 숨졌고, 맏사위 김용환은 만주 독립군 기지를 지원하다 일제에 붙잡혔다. 그는 사진 한 장 남지 않았지만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은 남았다.

'하계마을'은 퇴계 손자인 동암 이영도의 후손들이 500년 문화를 꽃피운 곳으로 18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3'1절을 맞아 '경북의 독립운동 대표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북지역에는 일제에 맞서 한마음으로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정에 문중'형제들이 함께 나섰던 '독립운동의 성지 마을'이 많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제94주년 삼일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를 10명 이상 배출한 경북 독립운동 마을 18곳을 선정해 기획전시 중이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과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을 비롯해 청송과 봉화, 예천, 의성, 청도, 영덕 등 독립운동사에 큰 흔적을 남긴 마을들이다.

이 마을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다양하다. 의병항쟁부터 자정순국, 3'1만세운동, 군자금 모금, 사회주의운동, 의열투쟁, 한국 광복군투쟁, 학생운동까지 광복을 맞는 순간까지 쉼 없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특히 경북 마을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문중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해외독립운동의 전초기지를 마련하는데 목숨을 바쳤다.

경북의 독립운동에 대표적 마을인 '내앞마을'은 1907년 김후병이 협동학교를 세워 영남지역에 혁신 바람을 일으켰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김대락과 김동삼 등 문중이 만주로 건너가 해외 항일투쟁의 선봉이 됐다.

봉화 '바래미 마을'은 의성 김씨 팔오헌 김성구의 후손들이 사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14명을 배출했다. 1896년 의병항쟁(김하림)과 군자금 모집, 흑색청년자유연합회, 태극단과 한국광복군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나섰다. 청송 '덕천마을'도 1896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심성지를 중심으로 '청송의진'을 결성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강윤정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학예실장은 "'마을'은 생각과 생활의 틀을 나누고, 오랜 시간 이어오면서 고유한 문화를 생산한 공동체"라며 "이들은 기득권을 역사적인 책임으로 승화시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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