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스마트' 유감

입력 2013-02-22 11:16:55

요즈음 아내는 '스마트' 무엇인가 하는 휴대전화기에 빠져 있다. 말이 휴대전화기이지 손바닥에 들어오는 간편한 컴퓨터다. 그 기능이 너무 똑똑하고 신기하다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쉽고 편리하며 디자인도 예쁜 이 제품을 쥐고만 있어도 제법 '스마트'하게 보인다. 한동안 잔소리 덜 듣게 되었으니 나도 덩달아 그 무슨 '스마트'라는 게 생활에 유익하다 싶다.

이 시대 '스마트'로 대변되는 디지털문명은 이미 일상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주택과 동네, 심지어 공공시설과 도시 자체까지, 즉 의식주생활 어디에서든 '스마트화'를 쉽게 만나게 된다. '스마트'라는 용어 자체가 요즈음 세상을 대표하는 것 같다. '스마트'는 곧 혁신이라 할 정도이다. 그러니 과연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냥 따라가야 하는가?

본래 '스마트'는 영리하고 민첩하며 세련됨을 뜻한다. 그렇지만 '스마트'에는 좀 약삭빠르고 건방진 부정적인 뜻도 숨어 있다. 따라서 지능적인 것이 꼭 최선은 아니듯이 '스마트'하다고 전부 옳고 좋은 것은 아니다.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첨단로봇이 소름끼칠 정도로 비정하지 않은가. 그 세계에서는 착한 로봇이든 나쁜 로봇이든 다들 '스마트'하다.

이러한 양면성을 지닌 '스마트'가 추구하는 패러다임은 곧 효율성, 그중에서도 특히 즉시성과 정확성이다. 그 지배체계는 미리 구성된 프로그램과 조직된 틀에 작동하며 사소한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융통성이 보장된 자동화나 자기 조정식일지라도 그 특정한 메커니즘의 작동방향은 늘 고정되어 있다. 이런 방식은 사람으로 치면 너무나 계산된 행동거지이다. 그러하니 이제는 급속히 진화하는 '스마트'에 뒤처지는 '거리감'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는 그냥 수단일 뿐, 그 자체에는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나 다루어야 할 내용은 없다. 즉 콘텐츠가 없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스마트'하다고 할 때 그 자체가 어떤 보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기준으로만 따져서 '스마트'하다는 것일 뿐이지, 모든 점에서 소통되고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만능은 아니다. 결국 '스마트'를 너무 강조하면 개별성은 무시되고 획일성만 강요받게 된다.

이러하니 혹시라도 '스마트'한 겉 매력에 너무 빠져서 사용자 스스로 '인간로봇'처럼 기계를 닮아가는 사태가 오지는 않을까? 주관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한 채 장치에 의존하게 되고, 정보의 바다에서 올바른 선택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을지. 결국 '스마트 추종자'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세상이란 설령 잘 계산되고 기능적이긴 해도 동시에 개개인은 자발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도시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나는 이렇듯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을 디지털과 장소의 합성어인 '디지토피아'(Digitopia)라 부르고 싶다. 디지토피아에서는 아무리 완벽함과 합리성의 좋은 점을 내세운다 해도, 따뜻한 인간미는 궁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될 것이다. 희망컨대 이곳에서는 누구나 주체가 되어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적절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토피아가 비인간적이며 절망적인 도시인 '디스토피아'(Dystopia)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아날로그의 현명함이 주도해서 '스마트'의 효율성을 이끄는 것이다. 즉 방향설정을 제대로 하고 '스마트'한 태도와 장치를 활용하되 모두가 직접 행동해야 한다. 효율성에 감성을 실어 지혜롭게 헤쳐나가자는 것이다.

지난 시절 '잘 살아보자'며 땀을 흘려 크게 이루었다. 새 시대에서는 '제대로 살아보자'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행복사회'라는 비전도 설정되었으니, 지금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가치를 응집시키고 제격을 바로 세울 때다. 그 방법의 하나로서, 우리 경상도 기질, 즉 대구의 정신과 경북의 혼이 지닌 올곧은 진정성을 '스마트한' 방식으로 다듬어서 새로운 버전의 시대정신으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이끄는 '국민에너지'로 삼자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싫증이 날 즈음이면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아내는 또 푹 빠질 것이다. 곧 들통이 날 것만 같은 나의 이런 빤한 속셈이야말로 정작 없애야 할 영악한 '스마트'의 전형이리라.

김영대/영남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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