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전남 화순 모후산

입력 2013-02-21 14:01:49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산세…여름 상사화, 겨울엔 설경이 압권

우리나라 최초의 고려인삼 시배지이기도 한 모후산은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겨울 설경이 아름다운 산으로 여름에는 상사화로 유명하다. 그동안은 인근의 무등산과 조계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원래 이름은 나복산(羅蔔山)이었다. 그러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안동'순천을 거쳐 이곳까지 피란을 왔다고 한다.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는데 수려하고 포근한 산세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 하여 모후산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산 이름은 모호산(母護山).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이곳 동복현감인 서하당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해 모호산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유마사다. '동복읍지' '유마사향각변건상량문'에 의하면 백제 무왕 28년(627년) 중국 당나라의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보안 보살이 채로 달을 건져 올려 비구승을 공부시켰다는 제월천과 보안 보살이 치마폭에 싸 옮겨 놓았다는 보안교(普安橋)가 1천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현존하고 있다.

사찰 입구에는 고려시대 해련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보물 제1116호의 부도탑이 보존되어 있다.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첫 번째 이정표(모후산 정상 4.7㎞, 용문재 3.3㎞)가 나타난다. 주위로 여러 개의 돌탑이 줄줄이 서 있고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소나무가 있는 황톳길 둔덕 아래 유마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고 곧이어 두 번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정상 3.9㎞, 집게봉 1.8㎞)이다. 우측은 집게봉으로 가는 길이다. 용문재로 올라 이곳으로 원점회귀하게 된다.

계곡을 횡단하는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25분이면 우측에 정자가 반긴다. 뱀골과 산막골의 양 갈래 계곡물이 합수되는 곳에 목책 계단을 세 방향으로 만들어 놓은 갈림길이 나타나고 직진이 용문재고 우측이 계곡을 건너 뱀골을 따라 철철바위와 중봉으로 가는 길이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는 넓은 길이다. 옛 숯가마 터를 지나 20여 분이면 두 번째 원두막 정자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다. 우측이 철철바위와 중봉으로 비켜 가는 길이다. 두 번째 정자에서부터는 등산로가 서서히 가팔라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통과하면 용문재다. 이곳까지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용문재에서 예상치 못한 광경에 산객들이 흠칫한다. 주능선을 파헤쳐 모노레일 공사를 히고 있다. 어느 누구의 칼럼 제목처럼 '저주받은 모후산, 그 비운의 현장을 가다'의 내용이 실감 난다. 불투명한 강우레이더 기지 공사의 상흔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만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지만 관광자원화라는 명목 아래 무지한 인간 몇 사람이 저지른 대표적인 산악 파괴의 현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다.

우측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모노레일 우측으로 임도 같은 등산로가 나있다. 산죽지대와 함양 박씨 묘를 지나 15분이면 시야가 서서히 트이기 시작한다. 가파른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정상에 앞서 멋진 조망이 입가심처럼 펼쳐진다. 항아리를 엎어놓은 듯 철옹산성의 바위로 이루어진 옹성산이 지척이고 그 너머로 무등산이 설경으로 다가선다. 옹성산 우측 너머로 흰 거위들이 내려앉아 노니는 것처럼 백아산도 또렷하다.

잠시 내려섰다가 가장 높은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면 모후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20여 분 만이다. 헬기장이 넓은 정상에는 화순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반긴다. 정상 직전의 전위봉에서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 조망이 압권이다. 산자수명한 경치가 어떤 것인지 주암호를 비롯한 전남의 크고 작은 수려한 산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지고 남해바다의 득량만을 위시해 주암호를 안고 있는 조계산도 지척이다. 모후산 조망의 최대 장점은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반야봉과 노고단 등 지리산 전 주릉이 한눈에 든다. 진행해야 할 쪽으로 중봉의 허리춤을 잡고 있는 집게봉도 이색적인 조망으로 다가선다.

중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중봉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중봉에도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직진하면 집게봉, 우측이 유마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도 가파른 길이 연속된다. 연리지나무와 숯가마터, 통나무로 엮어 만든 다리로 계곡을 건너면 가파른 길이어서 겨우 숨을 고른다. 완만한 등산로 주변의 철철바위를 통과해 10분이면 오름길에 보았던 갈림길이다.

시간이 남아 유마사를 다시 들른다. 고려 때 8개의 암자를 거느린 거찰 유마사는 호남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라는 의미만으로 한국전쟁 당시 사찰 모두가 전소되었다. 그것을 근래에 다시 복원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모후산은 주암댐의 담수에 의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러져 있다. 유마사와 용문재를 거쳐 모후산'중봉을 돌아 원점회귀하는 데 총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용문재에서 정상까지 강우레이더 기지 건립계획 공사로 등골처럼 파헤쳐져 흉물스럽지만 마지막 설경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산을 오른다는 것이, 꼭 좋은 산, 아름다운 산을 추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아름다운 숲길이 있는 웰빙 산행지 모후산이 인간의 이기, 그것도 몇 사람의 허황된 욕망에 의해 무참하게 황폐화될 수 있다는 것을 교훈처럼 배울 수 있다. 산의 파괴에 분노해서일까.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는 모후산이 만들어내는 설경이 그래서 더 각별하고 처연하게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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