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학교마다 졸업식이 이어졌다. 교정의 먼발치에서 선생님들은 제자의 안녕을 빌며 역무원의 깃발처럼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이런 졸업 철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잊지 못할 선생님 한 분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신학기의 시작을 앞둔 시점이었다.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실 것이라는 풍문이 선생님들 사이에 나돌았다. 그리고 며칠 뒤, 봄날 어스름한 새벽빛 너머로 교정 입구에서 비질을 끝내고 사라지던 작업모 아래 어떤 그림자를 나는 보았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이런 숨은 배려의 그늘 아래 우리는 잉크 냄새 짙은 월 평가표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면서도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자기 존중과 자주적 태도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신 당신의 훈화 말씀 원고가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을 정도로 부임 시초부터 선생님은 실천이 앞서는 조용한 성품이셨다.
원래, 우리 학교는 거칠었던 졸업 선배들로 인한 감추고 싶은 과거, 못을 메운 자리에 세워진 건물과 자갈투성이의 운동장뿐이었다. 그러던 교정에 강당을 지을 터가 닦이기 시작했고, 남자고등학교임에도 쑥스럽게 합창단이 생기면서 우리가 녹음한 '스승의 은혜'의 정겨운 가락이 기계음 수업 벨을 대신해 운동장 너머 흘러나갔다. 또한 예고 없이 시화전에 들른 선생님의 금일봉 하사에 어린 시인들은 감동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량하기만 했던 등굣길, 봄부터 당신께서 몰래 가꾸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늘어섰을 때의 그 가을 아침의 찬란함이란!
졸업 후, 여러 해가 지나 우연히 나는 교장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
복잡한 시내 네거리에서 사무실이 많은 길가에 선 채 취업원서들을 든 선생님께서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교복과 명찰 색깔로 보아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선생님께서 그 한 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곤 이내 그들과 함께 어떤 건물 위층으로 사라지셨다.
이렇게 간혹, 내가 고등학교 은사님들을 포함하여 여러 선생님을 한 분 한 분씩 헤아려보며 추억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볼 때마다, 어떤 기술적인 교육정책들보다 헌신적인 선생님들의 인격 자체가 뜻 깊은 교육적 좌표가 돼왔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지금, 창밖에선 우수(雨水)의 아침 비를 맞고 있는 가지가 안개꽃 같은 물방울들을 머금고 있다. 저렇게 순하게 빗물을 먹으면서 초목의 싹들이 자라나듯 이제껏 선생님들을 통해 우리가 배웠듯이 우리의 자녀도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잘 성장하길 희망해본다.
장두현<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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