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잘하는 학생 지식경제시대엔 안통해"
올해 개원 41주년을 맞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싱크 탱크'(Think tank)로 불린다. 1972년 '콩나물 교실' 해소를 목표로 문을 연 이곳은 최근까지 각종 교육 현안과 정책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왔다. 입학사정관제 같은 대입 제도 아이디어도 이곳에서 잉태됐다.
지난 3년간 이곳 수장으로 지난해 12월 퇴임한 김태완(65) 전 한국교육개발원장(계명대 교육학과 교수)을 14일 만났다. 21, 22일 경북대에서 열리는 매일신문사, 대구시교육청, 경북도교육청 공동 주최 '제1회 대구경북청소년학술대회'에서는 기조강연을 맡았다. 김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과 지향점, 인재상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대구경북청소년학술대회 기조강연을 흔쾌히 맡아주셨다.
"지방에도 이런 대회가 생겨서 무엇보다 반갑다. 대구에선 '1인 1책 쓰기 운동' 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주 잘하는 일이다. 앞으로는 입학사정관제처럼 학생이 가진 잠재력이 중시되는 시대가 된다. 산업사회에선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지적인 능력만 중시됐지만 지식사회에서는 창의성과 인성, 소통능력, 혼자 문제를 해결해가는 자율성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수능 성적이 절대적이지만 미국 경우 SAT 성적 배점은 20~30%, 고교 내신 성적이 50~60%, 나머지가 서류나 포트폴리오다. SAT 성적은 몇 점 이상만 되면 OK라는 식이다. 일정 수준의 학력은 필요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KEDI 산하 영재교육센터도 3, 4년 전부터 한국과 전 세계의 중'고교생들이 함께하는 '국제청소년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for Youth'ICY)를 매년 주최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이 제출한 관심 분야 논문을 비슷한 주제별로 묶어 발표, 토론으로 진행한다.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 경우 과학고나 외국어고 학생의 지원이 많다. 이런 청소년학술대회가 전국적으로 많지 않은 반면 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런 대회에 대한 수요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지식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어떤 것인가?
"현재 우리는 산업경제시대에서 지식경제시대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살고 있다. 지식경제시대에는 산업경제시대와 다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산업경제시대에는 학교교육의 목표가 소위 SKY라 불리는 우수한 대학 입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경제시대는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양성이다. 글로벌 인재는 어떤 능력을 지녀야 할까. 우선 정직하고 따뜻한 인성을 가진 인재다. 정직하지 않으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정직한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도 소통의 기본이다.
모국어와 외국어 등 개방적인 국제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소통능력, 수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 컴퓨터 등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기초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자신의 시간과 돈,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 대한 관리 능력이 있어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들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사고능력을 갖춰야 한다."
-3년 만에 대학에 복귀했다. 소감은?
"대학들이 잘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려면 좋은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수, 교직원들이 변해야 한다.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졸업 후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제 우리 대학들도 국제무대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해야 한다. 값싼 인건비와 자동 기계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 마케팅, 홍보, 디자인, 글로벌 기업관리 능력이 각광받고 있다. 이제 우리 청년들도 글로벌 취업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KEDI 원장 재임 기간 동안 특히 강조한 점이 있다면?
"유네스코, OECD, 월드뱅크 등 국제적인 기구와의 협력 관계 구축이다. 한국의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의식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 때문에 국제적인 추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한국의 교육 수준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진국들과의 교류를 더한다면 교육 분야에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유네스코가 2015년 세계교육자대회를 한국이 유치하도록 요청했는데 한국이 교육 분야에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10여 년간의 국제적 교육 어젠다인 'Education For All'(모두를 위한 교육 혜택)를 대체할 포스트 어젠다를 연구'제시해야 한다."
-2009년 초대 대학선진화위원장을 1년가량 지냈다.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해 우리 대학 사회에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자율을 좋아하지만, 정작 자율에 따르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학생 부족과 부실한 교육이 반복되면 대학 경영은 악화된다. 일본의 경우 사립대 파산이 종종 있다. 우리 대학들의 사정은 다르다. 현재 국내 대학은 4년제와 전문대를 합해 360개가량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 대학은 자연히 퇴출에 내몰린다. 그런데 대부분 사학 설립자들이 결사적으로 대학을 유지하려고 한다. 대학이 정리됐을 때 그 재산이 전부 정부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설립자가 재산 일부라도 가져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학생 등록금으로 쌓은 학교 재산을 설립자가 가져가는 것'이 국민정서에 반한다는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이렇게 되니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자연스런 퇴출이 불가능하다. 퇴출제도가 없으면 깡통대학이라도 붙들고 있게 되고, 편법 운영이 더욱 빈번하게 된다.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2004년 무렵 '대구경북 교육국제화특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동기가 있나?
"나는 개방주의자다. 국산영화도 영화시장 개방 후 경쟁력을 갖춘 것처럼 우리나라 교육도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 교육국제화특구 논문을 쓰게 된 것은 그 무렵 이주호 당시 의원이 교육개방에 대한 나의 생각에 공감해 연구 용역을 맡겼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국제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초'중'고교 교육 국제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 교육 국제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 대구는 경북대가 있는 북구, 계명대가 있는 달서구 등 2개 기초지자체가 특구로 지정됐는데, 논문을 쓸 무렵에는 좀 더 큰 스케일, 광역 지자체 수준의 특구를 염두에 뒀다. 2007년 무렵 교육 개방화에 성공한 싱가포르를 방문해 현지의 존스홉킨스 대학 분교, 시카고 대학 분교 등을 둘러보며 대학시장 개방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됐다."
-개강 후 계획이 있다면?
"새 학기부터 학부, 대학원에서 교육행정과 교육정책에 대한 강의를 맡게 됐다. 틈틈이 교육의 국제적인 큰 흐름을 정리해 소개할 생각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국내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6개월 이후면 출간할 것으로 본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김태완 교수는…
김태완 전 한국교육개발원장(15대)은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정책 아이디어를 내고 정책을 다듬는 일을 해왔다. 경남 창녕 출신인 그는 초'중학교를 대구에서, 고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서울대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80~88년 미국에서 보냈다. 89년 귀국 후 3년간 KEDI책임연구원으로 일했고 1992년부터 계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교육정책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자율화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학선진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초대 회장을 지낸 한국교육정책학회는 KEDI, 교과부, 대학의 젊은 박사들의 모임인 '춘하추동'이 전신이다.
2004년 무렵에는 당시 이주호 의원의 제안으로 현 교육국제화특구의 모태 격이 되는 '대구경북 교육국제화특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 '교육도 개방돼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소신을 펼쳤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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