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죽음은 모든 생명체의 가장 확실한 미래이기도 하다. 가장 피하고 싶지만, 가장 명확한 미래의 사건. 비유하면, 죽음은 가장 증오하지만, 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같다. 이 적과 한 집에서 동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삶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로초를 구하러 신하들을 곳곳으로 파견했던 진시황은 죽음을 물리칠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운 인물이다. 물론 그는 졌다. 이 무모한 태도는 영생은 생물학적 생명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18세기 유럽의 한 의사는 "생명은 죽음을 피하려는 맹목적 의지에 불과하다"고 생명을 정의하기까지 했다. 이런 생각은 삶을 생물학적 생명과 동일시하는 지독한 자연주의의 한 행태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이보다 지혜로워 삶은 자연적 생명을 장식하는 행위이지, 단순한 죽음의 회피가 아니라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덕분에 죽음과 싸우는 대신 구슬리고 달래 동행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 중단되는 삶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다양한 정신적 장치들을 발명한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 이 정신적 장치들은 네 개의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천당과 극락 같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개체의 생명이 그대로 내세로 이월된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소멸의 공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득한 우주의 먼지 속에 낙원을 지으려면 얼마나 고단한 마음 노동이 필요할 것인가.
둘째는 DNA를 물신화하는 것이다. '나=자식'으로 종의 연속성을 삶의 연속성으로 상상하는 이 방식은 자연적인 인간성에 기초해 손쉽게 접근 가능하지만 자식을 위해 소멸을 감내하는 희생이 요구된다. 자식은 부모를 통해 종의 연속성을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는 버림받기 쉽다. 그래서 현실은 희생 대신 자식을 통제하려는 부모의 권리주장과 탈주하려는 자식의 자유의지의 투쟁으로 점철되지 않는가.
셋째는 인간과 우주의 살아있는 만물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는 범신론적 상상력이다.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나'를 위치시켜 삶의 고유한 개별성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희석하는 방식이다. 고대와 중세에는 보편적인 삶의 태도였지만, 요즘은 일부 수도승들에게서나 찾을 수 있다.
넷째는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삶의 연속성을 찾아낸 현대의 성숙한 무신론자들의 방식인 공동체 의식이다. 공동체 의식은 지금 현재 내 삶이 타자의 삶과 깊이 연관돼 있음을 확신하는 사회의식과 내 삶은 공동체의 집단적 삶을 통해서만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역사 의식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공동체 의식의 소유자는 죽음 이후의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공동체에 남긴 궤적을 통해서 상상하는 인물이다.
이 네 유형 중 가장 대중적인 방식은 2번을 예금으로, 1번을 보험으로 드는 것이다. 자식을 통해 삶의 연속성을 상상하지만, 미진해서 혹시 내세가 있으면 내가 직접 영생하는 판타지를 보충하는 방식! 이 방식은 가장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철저하게 고립된 개인적 차원에서 이기적으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는 이 방식이 특히 많다. 그래서일까? 삶이 힘겹고 무서워 죽음을 자청하는 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실에도 사회가 이토록 무덤덤한 것은. 나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타자의 죽음에 대한 무심함의 낙차가 이렇게 유별난 것은.
죽음을 대면하는 방식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죽음 자체는 어차피 어떤 방식이든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은 이 사실을 알았던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범신론적 상상력과 공동체 의식을 무기로 죽음과 대면했다. 평생 숲 속에서 노동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노년에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런 역설이 아닐까? 타자의 생명에 대한 관심이 나의 죽음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타자를 통해 자신의 삶의 연속성을 상상하는 이가 많아지면 우리 삶의 풍경도 바뀌지 않을까?
남재일/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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