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현대미술 이끈 30년 캔버스 우정 '3色 데이트'

입력 2013-02-14 07:44:49

이배·남춘모·이교준 화백, 동원화랑서 '세 화음'전

▲대구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남춘모·이교준·이배(왼쪽부터) 화백이 눈 내린 2월 어느날 한자리에서 만났다. 우태욱기자
▲대구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남춘모·이교준·이배(왼쪽부터) 화백이 눈 내린 2월 어느날 한자리에서 만났다. 우태욱기자

# 독특한 행보와 작품세계

# 한자리 접할 기회 이례적

# 대구 작가 인프라 과시도

30년 이상 화가로서 서로를 지켜보던 세 명의 벗이 전시장에서 만났다. 전시 제목은 '세 화음'(Trois accords). 대구 현대미술의 중견 작가들이다. 이배는 일찌감치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 파리와 뉴욕, 청도에 작업실을 두고 있으며 파리, 베이징 등에서 미술관급 전시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남춘모는 2009년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해 독일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올해 뉴욕 전시를 앞두고 있다. 이교준은 지역에서 뚝심있게 작업을 펼쳐왔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이 동원화랑에서 3인전을 여는 것, 게다가 구상 회화 중심이던 동원화랑에서 전시하는 것은 뜻밖의 '사건'이다. 30여 년간 구상 회화에 무게 중심을 두었던 동원화랑이 최근 화랑 리모델링을 마치고 첫선을 보이는 전시다.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는 "올해 화랑의 전시 성격을 확장시키는 의미에서 여는 전시"라면서 "화단에는 오랫동안 구상 회화 작가들과 현대미술 작가들, 그리고 화랑들도 나뉘는 경향이 있었는데 새로운 의미의 소통을 꾀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니멀리즘한 작품 성격을 띠는 이 세 작가는 저마다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이배는 일찌감치 국외에서 활동했고 남춘모는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 이교준은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30년 이상 친했지만 한자리에서 전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교준은 "현대미술 50대 작가로 이뤄진 이런 전시는 서울과 대구 이외에는 성사되기 어려운 전시"라면서 "대구가 그만큼 작가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작품으로 주목받아왔다. 이교준은 '면을 선으로 나누는 것'에 천착해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기계적인 직선이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고, 그 외에 어떤 메시지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배는 숯이라는 재질을 깊이감 있게 표현한 무채색의 화면으로 사색의 세계를 펼친다. 남춘모는 선을 캔버스 위에 입체적으로 세워, 선을 색다르게 탐구해왔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미술 시장 전반으로 확장됐다.

이배는 국내 작가에 대한 홀대가 아쉽다고 강조했다. "외국에서 빛을 발하는 한국 작가가 유독 국내에선 맥을 못 춰요. 그게 너무나 안타깝죠. 국내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은 작가들이 잇따라 국외 시장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거든요. 하지만, 국내 작품 값은 턱없이 낮아 많은 작가가 힘들어하고 있어요." 손동환 대표는 "자국 미술에 대한 프라이드와 애정이 없고, 국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시세 차익을 염두에 두고 구입하는 국내 미술계의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5월 뉴욕 전시를 앞둔 남춘모로 화제가 옮겨졌다. 남춘모는 이배의 말이 국외 진출에 큰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사실 국외 미술 시장에 대한 환상만 있을 뿐 대구에서 이것을 경험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이배가 유일하다시피 했어요. 그때 끊임없이 국외로 나가라는 말을 들었죠."

50대에 끊임없이 의지를 갖고 국외 화단을 노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해외 전시를 쉽게 보는데, 그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남춘모는 덧붙였다.

세 작가 모두 평면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사진과 영상, 설치와 복합 매체로 미술은 그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사실 캔버스 앞에 선다는 것은 수천 년간 계속된 회화의 역사를 대면하는 무게감이 있다. 화가로선 늘 새로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배는 "프랑스 화단에는 평면 작업하는 작가가 오히려 희귀할 정도"라면서 "우리나라에 평면 회화에 뛰어난 감성을 가진 작가가 많고, 그게 한국 미술의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현대미술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남춘모는 "우리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주었듯 선배들의 길이 후배들에게 자극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교준은 "나는 아직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표본이 되어주고 멋있으면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시는 18일부터 3월 9일까지 열린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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