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울컥울컥 토닥토닥

입력 2013-02-12 11:10:41

J. 어느 한 비영리단체의 엄마격인 그녀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성격 또한 시원시원하다. 20대 처녀 시절엔 쪽방촌의 지린내 나는 공동화장실 변기들을 손으로 북북 문질러 청소한, 굉장한 여성이다. 두 아들의 엄마로, 소심하다는 그녀 자신의 말과는 달리, 그녀를 만난 누구라도 그 스스럼없고 유쾌 활달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마흔 살이 된 올해 초부터 노래를 부른다, 40세하고도 32일이 지났네, 우울하네, 눈물 나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작은 일에도 울컥울컥 하지?"

K.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의사이다. 방대한 인문학적 식견에 날카로운 필력, 거기에 적확한 독설까지 갖춘 그분을 존경하는 후배들은 많았지만, 편하게 대하긴 어려운 분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날카로운 눈빛 대신 온화한 눈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셨다. 만나면 반가이 악수를 청하고, 헤어질 땐 안아주며 '토닥토닥'이라는 의성어이자 의태어를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등을 두드리신다. 우리가 '토닥토닥이즘'이라 이름붙인 이것.

울컥울컥, 토닥토닥. 여자인 J도 남자인 K도 갱년기를 거치는 중이다. 막 40줄에 들어선 그녀는 초기증상이라 할만한 '울컥울컥', 40줄을 막 빠져나간 그는 갱년기의 성공적 결과인 '토닥토닥'을…. '질풍노도'가 사춘기를 특징짓는 말이라면, '울컥울컥 토닥토닥'은 갱년기, '사추기', 또는 제2의 사춘기라 할 중요한 인생 여정을 단 두 마디로 표현할 만한 것이다.

사춘기와 갱년기(사추기-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다). 이것의 본질적 특질은 무엇일까. 사춘기(思春期)는 말 그대로 (인생의) 봄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봄은 본격적으로 만물이 성장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영어로는 'adolescent'인데, 'adolesc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성장하다'라는 뜻이란다. 그러니, 사춘기의 본질은 쉽게 화내고 짜증내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뇌를 이고 있는 생명체라기보다는 '성장의 고통과 영광'을 함께 겪고 누리는 데 있다.

고통스러웠지만 운 좋게도, 울컥울컥과 토닥토닥을 압축적으로 다 경험한 나로서는 갱년기의 본질 또한 '성장'에 있다고 본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말대로 제대로 갱년기를 잘, 그리고 농밀하게 겪은 나는, 사회적으로 또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갱년기(사추기)의 과제이자 축복이라고 믿는다.

존재의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울컥울컥'의 고통은 '토닥토닥'이라는 공감의 연대를 통해 승화된다고 믿는다. 내가 누구인가, 이 우주, 이 사회에서 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갱년기의 천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나만 '울컥울컥'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그렇구나 하고 공감하는 것, 그리고 '토닥토닥'은 공감하는 사람끼리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헨리 나우헨이 말했듯이, 외로움에서 창조적인 고독(solitude)과 연대(solidarity)로, 그리고 적대감(hostility)에서 따뜻한 환대(hospitality)로 발돋움해야 한다.

굳이 영어를 병기한 것은, 한두 철자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쌍을 이루는 두 단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과 뿌리는 같지만 어떤 길로 걸어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울컥울컥'은 외로움에서 창조적인 고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씨앗이고, '토닥토닥'은 연대와 환대로 이어지는 열매이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리 호이나키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성장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울컥울컥하고 토닥토닥한다.

그러나 토닥토닥은 심정적 치유나 연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심정적인 울컥울컥보다 수만 배는 더 심한 사회적인 울컥함을 삼키고 있는 사람들을 '와락' 껴안는, 따뜻한 환대와 연대의 '토닥토닥'이어야 한다. 그래야 갱년기가 축복이 된다. '울컥울컥'에 들어온 모든 이들에게, 김재진의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에 실린 시 '토닥토닥'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찾아서 보시길.

김성아/(사)더나은세상을위한 공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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