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주택건설 10개년 계획으로 아파트가 등장한 후 너나 할 것 없이 내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채를 얻는 것이 보편적 삶의 목표였다. 편리성과 경제성으로 무장한 아파트의 파괴력이 주거 트렌드를 한꺼번에 바꿔 놓은 것이다.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평범한 삶이 아닌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하지만 대다수 아파트는 네모 반듯한 성냥갑 모양의 획일적인 구조다. 디자인과 편의성보다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가구수를 넣기 위한 효율적 측면이 중시됐다. 아파트가 닭장이란 불명예를 앉은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언어와 주위 환경이 사고를 규정하듯 직선만을 강조한 아파트 문화는 사고의 직선화를 불렀다.
우연히 유치원에 가서 천사 같은 아이들이 그린 자기 집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가장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라는 애마저 네모 반듯하고 높이 올라간 아파트를 그려놨다.
이런 아파트 방식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다보니 건축설계 작업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모두의 관심이 경제적인 것에만 집중, 자연스레 건축사 역할도 축소되는 것 같다. TV드라마(신사의품격) 속에 나오는 건축사들처럼 화려하고 멋있다. 하지만 드라마 장막과 현실은 큰 괴리가 있다. 건축사들은 건축 과정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꾸준한 제안과 이해를 구하는 따뜻한 가슴을 품어야 하지만 현실은 돈 가진 사람 즉, 의뢰인의 입맛에 맛는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손님이 떨어질까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조미료를 더 많이 칠 수밖에 없는 식당 주인이 오버랩되는 이유다.
현상이 이렇다보니 공간설계 또한 새로운 것보다 이전의 것을 답습할 때가 많아지고 건축주들은 "집은 다 거기서 거기니 주변 인프라를 보고 집을 사야한다"는 상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요즈음 내가 하는 작업은 도심지 외곽으로 소규모 공동전원주택을 설계하고 있다.
도시 외곽지에 돈이 넉넉지 않은 친한 지인들끼리 소규모 땅을 공동으로 구입하여 건축하는 방법이다. 아파트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연구해낸 대안이라 생각된다.
일명 땅콩집이라 부르기도 하며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듀플렉스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된 주거양식이다. 신기술이라 할 만한 것이 없던 이 주거방식이 요즘 많은 분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누군가 사람들이 왜 그리 관심을 보이냐고 물어보면 단지 기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나 보다라고 할뿐이다.
실제로 많은 건축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고 있는데 이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참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일단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아이를 키우는 30, 40대 부모라는 것과 돈이 넉넉지 않다는 것, 그리고 현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상담을 하다보면 마치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건축주와 건축사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다보니 건축설계 상담시간 동안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 웃음은 건축주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집이 생긴다는 기쁨과 떨림일 것이고, 건축사에게는 건축사로서의 분명한 역할을 통해 한 가정에 보다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보람일 것이다. 건축주의 소소한 일상과 그에 따른 요구사항을 듣다보면 학창시절 꿈꾸던 열정이 되살아나고 마음 또한 젊어지는 것 같다.
나는 젊어진 마음으로 그들에게 어울리는 제안을 하고 그들은 내말에 귀기울여 들어주며 자신의 의견을 보태준다.
이런 설계과정은 나로 하여금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수 있게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지금 난 예전에 느꼈던 악순환과 비교되는 선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크고 화려한 것을 쫓기보다 작고 수수한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재밌게 그리고 즐겁게….
자기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 우리 모두 각자 맡은 일에 희망과 소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작은일도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며 아무리 작은집이라도 가족과 행복속에 살아간다면 언덕위 하얀집이 될 것이다.
김종윤 대한건축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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