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둔감 이대론 안 된다' 컨설팅 나선 학교

입력 2013-02-12 07:16:20

"문제를 알아야 활력 넘치는 학교 만들죠"

변화의 흐름에 가장 뒤떨어진 곳이 학교라고들 한다. 문제에 대한 의식은 있지만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에 학교 경영 컨설팅은 대안이 될 수 있다. 6일 수성고의 학교 경영 컨설팅 중간 보고회 모습.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변화의 흐름에 가장 뒤떨어진 곳이 학교라고들 한다. 문제에 대한 의식은 있지만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에 학교 경영 컨설팅은 대안이 될 수 있다. 6일 수성고의 학교 경영 컨설팅 중간 보고회 모습.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학교가 경영 컨설팅을 받는다?'

기업이 외부 전문 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책을 의논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지만, 학교가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교사들 스스로도 학교가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폐쇄적이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하는 걸 보면 학교는 어느 곳보다 경영 컨설팅이 절실한 영역이기도 하다.

외부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것은 조직 내부에선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짚어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자율형 공립고인 수성고등학교는 지역의 학교로서는 처음으로 민간 교육기관에 학교 경영 컨설팅을 의뢰했다. 교육청이 각 학교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실시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수성고와 같은 사례는 이례적이다. 수성고의 사례를 통해 학교 경영 컨설팅이 어떤 것인지, 왜 학교 경영 컨설팅이 주목받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문제점? 터놓고 얘기하기, 수성고 사례

6일 찾은 수성고 시청각실. 이곳에서는 학교 경영 컨설팅 중간 보고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보고에 나선 이는 컨설팅을 맡은 (사)지식플러스 교육연구소의 김기영 연구실장. 이 연구소는 한국학교컨설팅연구회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곳이다. 연구소는 작년 10월부터 4개월 동안 월 2회 수성고를 찾아 교사와 학생을 면담하고 수업을 참관한 것 외에 학부모까지 포함해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김 실장은 수성고 교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교가 안고 있는 현실을 짚어 나갔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 스스로 진단한 수성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

설문조사 결과 학교 구성원 모두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수성고가 다른 학교에 비해 좋은 점으로 '시설'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아쉬운 점으로는 다수가 '학력 향상'을 들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 다른 학교에 비해 좋은 점으로 '시설'을 꼽는 이가 가장 많았고 교사들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진로 준비, 학력 관리 등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립고가 공립고보다 더 우수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현실 속에서 공립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과 과정 편성에 자율성을 높인 것이 자율형 공립고. 수성고는 자공고 전환 2년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 또한 설문조사에서 자공고 전환 전후 학교가 그리 달라진 점이 없다고 답한 경우가 다수일 정도여서 변화가 필요함을 실감케 했다.

이날 김 실장이 대안으로 제안한 것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다양화. "방과후학교에서 과제연구(R&E), 시사토론, 비교문화, 경영수학 등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학교에 대한 신뢰도뿐 아니라 경쟁력도 높아질 겁니다. 전문성을 높이고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더하지 않기 위해 방과후학교에 외부 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이어 중'장기 발전 계획을 짜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컨설팅 후 변화를 이끌고 추가로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교사의 몫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교무, 진학, 연구 분야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해진 방향은 학생, 학부모에게 안내하고 비전을 보여줘야 믿음을 얻을 수 있어요."

적나라한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교사들 대부분은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발표가 마무리된 뒤 교사들은 "예체능 전공 학생들이나 의욕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어떻게 추슬러 이끌고 갈지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됐으면 좋겠다." "다른 자공고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더 좋은 대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 등 의견을 내놨다. 일부 교사 가운데는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린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학교 변화의 시작, 학교 경영 컨설팅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는 개혁이라는 말이 늘 따라붙을 정도로 변화에 대한 시도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던 탓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교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장학 지도와 연수 역시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학교 컨설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모색되고 있는 대안이다.

학교 컨설팅은 크게 교육 영역과 학교 경영 영역으로 구분된다. 교육 영역의 컨설팅 중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수업 컨설팅으로 교사의 수업 활동에 대해 이뤄진다. 학교 경영 컨설팅은 요청이 있을 경우 학교의 경영상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추천하는 활동으로 학교가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영역을 담당한다.

(사)지식플러스 교육연구소에 따르면 학교 경영 컨설팅은 '준비→진단→해결 방안 찾기와 선택→실행→종료'의 단계를 거친다. 컨설팅을 위해서는 학교 내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수. 학교 조직 전반에 걸쳐 이뤄질 뿐 아니라 문제점 진단에 필요한 자료 대부분이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수집되기 때문이다.

최근 민간 또는 교육연구기관 등에서 학교 컨설팅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장, 교감, 장학사, 수석교사 등을 대상으로 학교경영컨설턴트 양성과정을 2년 전 개설,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연구와 활동을 촉진할 전문가를 더 많이 길러내 학교 현장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시도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학교 경영 컨설팅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 기존 관행을 답습해오는 것이 익숙한데 자기 자신과 동료의 문제를 솔직히 드러내다 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김 실장은 변화 자체를 꺼리는 학교 문화가 뿌리 깊어 외부의 관여를 기피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학교 경영 컨설팅의 궁극적 목표는 교사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자생적인 활력이 넘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수가 필요해요. 교사들이 학교 경영 컨설팅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도 확보해야 하고요."

쉽지 않은 학교 구성원 간 합의 과정을 거쳐 학교 경영 컨설팅을 받았다고 변화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김 실장은 컨설팅 의뢰자인 학교가 대안을 선택하고 실행하기 위해 구성원을 설득하고 관련 교육을 할 의지가 약하다면 컨설팅은 하나마나라고 지적했다. 컨설턴트는 문제 해결과 과제 수행을 돕는 사람일 뿐, 어디까지나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는 주역은 학교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학교장과 학교 구성원들로 이뤄진 TF의 의지가 컨설팅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학교는 최하급 교육행정기관이 아니라 교육의 질 향상을 책임진 최일선의 교육기관이에요. 활발한 학교 경영 컨설팅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사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학교와 교사들이 자긍심을 갖게 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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