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복지

입력 2013-02-12 07:59:07

이번 구정 때 이야기는 아니고 몇 해 전 아버님 기일에 생긴 일이다.

형님께서 막 '유세차 … 효자 ○○'의 축문 부분을 읽으시는데 등 뒤로부터 어린 손자 녀석이 침묵을 깨트린 것이다. "왜 큰아빠 이름만 부르지? 아, 아빤 불효자였구나!"라고 철없는 말은 뱉은 아들놈을 내가 나서 꾸짖지도 못했다. 그런 찰라 누님께서 "그래, 니 말이 맞다. 와 오빠만 효잘꼬?" 우스개 농으로 분위기를 돌리셨다. 이 "효자---"는 부자간 모스부호 신호음. 그 음률을 따라 소망을 실은 연줄처럼 하늘거리는 하늘 길에 가족은 방패연처럼 펄럭인다. 그래서 형님의 손끝 마디는 힘을 뗄 수 없다.

힘껏 그리고 한껏 하늘 높이 정초면 다들 이같이 가족들의 소망을 실어 띄웠던 방패연들처럼 모든 가정마다 만복이 깃드시길 빈다.

 명절 연휴가 그렇듯 이번 사흘 동안의 설 연휴도 고향 길을 오가기에 빠듯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로선 연휴 끝자락에 그나마 틈을 내어 한 대학후배와 오랜 만에 가볍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한 두 해 전부터 직종과 무관한 주변 사람끼리 친목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물론 청탁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임의 원칙. 몇 달 전, 모임이 아니라면 남이었을 회원이 깊은 고민을 이야기할 때 보람도 느껴지더란다. 기억해보니 첫 한 두 잔 오갈 때 이 기자 친구는 벌써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사회문제의 핵심에 전통적인 인적관계망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아무튼 듣자 하니 친목모임의 반경이 그의 생활 터전이 놓인 자리로부터 멀지 않게 방사되는 거미줄 같았다.

예상하건데, 어떤 정권의 정부가 진행하건 앞으로 일련의 국가주도형 복지사업들은 과도기를 겪을 것이다. 그동안 외로움이나 절망, 피폐해진 심리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들, 그리고 나날이 붉어지고 있는 학내폭력, 가정폭력 등과 자살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후배의 근황으로부터 암시받은 점은, 평범해 보이지만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동기는 누군가에게나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숨겨진 동기가 친목의 희미한 관계망을 통해 완화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선의 사회적 호르몬은 친구들의 가슴에서 분비되는 우정이다. 그리고 화목한 가족만큼 확실한 복지영역도 없다. 따라서 서구 복지이념의 장점을 도입하면서도 전통적 생활방식에 뿌리박은 정서적 웰빙의 가치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 "이-모-!"처럼 정겹고 실속(?)도 있으니까 식당에 앉은 어떤 외국인 유학생들은 금방 따라 배우지 않던가!

장두현<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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