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부부인 A(47'여'대구 달서구) 씨 부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아기를 입양했다. 올봄 또다시 입양기관을 찾은 A씨는 바뀐 법 때문에 비공개 입양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입양을 포기했다. 출생신고를 거친 아이들을 입양하면 가족관계등록부상 기록이 남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야 하고, 아이가 친부모를 찾아가진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A씨는 "여전히 혈육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입양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며 "긍정적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채 개정법이 공개입양을 강요하는 것 같아 되레 입양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미혼모 B(38) 씨는 임신사실을 알게 된 아이 아빠가 오히려 중절수술을 권하자 출산을 결심했다. 아이 아빠와 헤어지고 아기를 낳은 뒤 입양을 하려고 했다. 개정법에 따라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애인과 갈등이 생겼다. 오랜 설득 끝에 애인이 상황을 이해하게 됐지만 B씨의 근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기가 입양되지 않으면 친자관계임을 증명하는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적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B씨의 아기는 미숙아여서 국내입양 가능성이 낮다. 그는 "아기가 입양되지 않으면 출생 기록이 계속 남아있게 된다"며 "기록이 남아있는 채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어려우니 입양이 안 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시행된 개정 입양특례법이 입양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본지 2012년 7월 30일자 4면 보도)이 나오고 있다.
입양기관이나 복지시설에 의뢰하는 입양 및 입소 건수는 법 시행 이후 크게 줄었다. 홀트아동복지회 대구사무소에 따르면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직전 한 달 20여 건이던 입양 건수는 지난해 8월 이후 크게 줄어 6개월 동안 3건이었다.
대한사회복지회 대구지부의 경우 지난해 성사된 입양 100건 중 입양특례법 시행 후 이뤄진 입양은 3건에 불과했다. SOS아동보호센터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의 입소자는 12명으로 2011년 같은 기간 24명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은 친부모가 출생신고한 아동에 대해 친부모가 아기와 함께 보내는 7일의 숙려기간을 거친 다음 진행된다. 그 후에도 약 2개월에 걸쳐 양부모가 될 사람이 법원의 심사를 통과한 경우에 한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이뤄지고 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를 데려와 양부모의 친자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던 입양관행에 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홀트아동복지회 대구사무소 황운용 소장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양육능력이 부족한 친부모, 특히 일부 미혼모의 경우 적절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양육을 강요하거나 숙려기간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출생기록이 남지 않길 원하는 친부모는 아이를 입양 보낼 길이 막히자 아예 아이를 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대구에서 자신이 낳은 아기를 한 가정집 앞에 버린 여대생 미혼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미혼모 보호시설인 혜림원 박미향 원장은 "시설에 입소해 양육을 하려는 미혼모가 약간 늘었다"며 "일부 미혼모 중에는 입양이 막히자 양육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겨났지만 입양기관이나 보호시설을 통하지 않는 아기들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가정법원 차경환 공보판사는 "공적 장부에 사실 관계를 기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정법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되는 논란 때문에 입양기관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등 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입양아동을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개정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개입양에 대한 선진화된 인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