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에 미쳐 40년을 춤판서 살았지" "젊은 춤꾼들 가장 큰 장애물
삶 자체가 예능이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 이상호(69) 씨와 예능 같은 삶을 꿈꾸는 새내기 춤꾼 신준하(33)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가 마주 앉았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탈춤판에서 탈을 쓴 모습으로 살아온 그들의 민낯마저 탈 같은 모습이다. 자연스런 웃음 주름과 얼굴 표정에서 전해지는 속임 없는 모습에 천진난만(?)함이 엿보였다.
올해로 40년 탈춤꾼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씨와 탈춤꾼으로 발을 들여 놓은 지 10년이 다됐지만 '아직도 새내기'라는 신 씨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제법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정이 느껴진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탈춤꾼으로서의 삶,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하회탈춤의 미래, 하회탈'하회탈춤이라는 문화콘텐츠의 보존과 계승, 창작을 둘러싼 의견들을 쏟아냈다.
◆탈춤꾼의 삶을 살게 된 계기는
▷이상호 예능보유자(이하 이)=26살까지는 코미디언 등 방송국 예인생활을 했다. 27살에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결혼하면서 정착했다. 당시 하회탈(가면)이 국보로 지정된 상태였지만 탈춤의 명맥은 끊겨 있었다. 초기 뜻 맞는 몇몇이 연극협회를 구성해 가면극 복원에 나섰다. 제1회 안동민속제 때 탈춤 변사로 잠깐 참여했던 것이 탈춤꾼으로 이끈 계기가 됐다. 1976년 겨울 풍산장터에서 묵 장사를 하던 마지막 탈춤꾼 고 이창희 선생을 찾아냈다. 이듬해부터 본격 탈춤 복원 작업에 나서 경북민속상비군으로 지정되고, 1980년 11월 정부로부터 무형문화재 지정을 이끌어냈다. 올해로 탈춤 인생 40년을 맞게 됐다.
▷신준하 이수자(이하 신)=1996년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하회탈춤을 처음 접했다. 당시 덩실거리는 춤사위와 신명나는 가락이 엄청 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해 여름 열흘 동안 하회마을전수관에서 전수했다. 첫 배역에 '할미'를 맡았는데 허리춤이 되지 않는다고 숱하게 구박당하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
졸업 시기에 보존회 가입을 권유받았다. 당시 보존회는 회원 부족으로 존립이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단순히 학교 동기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가입하면서 탈춤꾼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특히 군을 제대했던 24살 때부터 안동에 정착하면서 10년째 탈춤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문 탈춤꾼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사실 지금에서야 탈춤꾼으로 인정받고 예우받는다는 느낌을 받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사회적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대부분 가정경제는 아내의 몫이었다. 나는 탈춤판이 벌어지면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듯 춤추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96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잦은 국외공연 등으로 하회탈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비로소 탈춤꾼으로서의 자부심도, 긍지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게 됐다. 신명과 끼로만 추었던 춤사위에 나름의 삶의 철학을 녹여냈다고 말해야 하나(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신=전문 탈춤꾼으로서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경제적 문제다. 특히 이상호 선생을 비롯해 어르신들과 달리 젊은 춤꾼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내가 전문 탈춤꾼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 문제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학교 방과후수업 등 풍물과 탈춤 강사로 활동하면서 살림살이를 보태고 있다. 그래도 우리 젊은 춤꾼들은 하회탈춤 발전 가능성과 다가올 문화시대에 대한 꿈,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긍심이 조금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하회탈춤보존회'하회탈춤 지원에 대한 기대는
▷이=하회탈춤보존회와 하회탈춤이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도 하회마을에서 권정달(당시 국회의원)'도영심 부부를 만나면서다. 특히 국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도영심(UN스텝재단 이사장) 씨는 하회탈놀이에서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했다. 이후 이들 부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문화기획자들 사이에서 안동국제탈춤축제가 만들어지고, 하회마을 상설공연과 국외공연 등 하회탈춤이 한국 전통문화의 대표적 상품이 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처럼 탈춤꾼들에게만 맡겨졌던 하회탈놀이가 정치권과 문화기획자들에 의해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찾게 된 것처럼 행정, 시민, 상공인 등 외부의 지원과 적극적 관심이 중요하다.
▷신=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인 하회탈'하회탈춤을 보존하고 이어가는 데 지원되는 예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안동시가 조사한 자산가치 평가에서 하회탈춤과 하회탈, 하회마을 등은 모두 800여억원에 이르고 있지만, 하회탈춤 상설공연에 3억8천여만원이 지원되는데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탈춤꾼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에 불과하고, 탈춤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재투자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전무하다. 숱한 창작 콘텐츠들이 몇 차례 공연에 십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 붓는 현실과 비교할 때 정치권과 행정의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보존회가 나가야 할 미래는
▷이=회원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은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탈춤만을 전문으로 하는 춤꾼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직장인으로 구성돼 평일 상설공연과 국외공연은 물론 여러 곳에서의 동시 공연 등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추진돼오다 중단된 하회탈춤의 '안동시립예술단' 전환이 재추진돼야 한다. 경제적 문제 해결과 다양한 하회탈춤 단체 구성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탈춤의 보존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신=하회탈춤의 '안동시립예술단' 전환을 둘러싼 일부 회원들의 반대 정서도 있다. 예술단에 참여하지 못하는 직장인 춤꾼들은 상대적 소외감과 한정된 주말'휴일 상설공연 참가 등 박탈감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하회탈춤보존회는 정부로부터 탈춤의 원형 보존을 위한 단체로 지정됐다. 이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의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발맞춰 하회탈춤을 소재로 한 뮤지컬'오페라'민극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산하 단체 구성도 필요하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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