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안의 아리랑 이야기] (7)'여인의 한' 진도아리랑

입력 2013-01-31 07:49:11

부부로 인연 맺지 못한 한스러운 사연…신명나는 곡조와 버무린 '한탄의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임권택 감독 영화 '서편제'는 동호(김규철 분)의 북장단에 유봉(김명곤 분)과 송화(오정혜 분)가 보리밭 길을 지나면서 한참 동안이나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 송화는 눈먼 소리꾼의 한을 야무지게 뱉어낸다.

진도아리랑의 발생지인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와 함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그 까닭에 진도는 옛 선비들의 수준 높은 문화가 그대로 서려 있으며, 오늘날 전통문화의 보고(寶庫)로 불릴 만큼 우리 고유의 음악과 무용이 잘 보존돼 있다. 그중 진도아리랑은 남도민요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진도아리랑은 남도 토속의 '산아지타령'과 경기아리랑을 모태로 하는 '남도아리랑'과 유사하다. 1930년대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39)가 '남도아리랑'을 기초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진도아리랑에는 두 가지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중 하나는 당골 총각에 관한 이야기다. 진도의 어느 당골집에 얼굴이 잘생기고 풍채가 좋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은 사랑하는 처녀와 혼약을 했지만 당골 세습에 부담을 느껴 도망쳐 버렸다. 경상도 지방 어느 대갓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된 총각은 주인집 규수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결국 주인 대감에게 이 사실이 발각되었고,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규수를 데리고 도망쳐 문경새재를 넘었다. 이들은 다시 진도로 들어왔는데 총각 집에서는 양반집 규수를 며느리로 맞게 되어 무척 기뻐했다. 어느 날 남자는 옛 생각이 나서 지난번 약혼했던 여인의 집에 가보니 그 여인은 문턱에 그대로 앉아 자기를 기다린 채 늙어 있었다. 이때 약혼녀가 원망하여 부른 노래가 진도아리랑이며 '문경새재'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또 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병들어 죽게 되자 외지에서 들어온 아내가 슬퍼서 불렀던 노래도 있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 길 왜 왔던고 바다에 뜬 배는 날 실어다 놓고 환고향 시킬 줄을 널 그리 모르느냐."

진도아리랑의 화자(話者)는 주로 여성이며 여인의 한스러운 삶을 한 올씩 풀어낸다. 또 다른 설화인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에서도 설이향이라는 처녀가 육지 처녀와 결혼한 소영공자를 원망하며 부른 한탄조의 노래다.

진도아리랑의 곡조에서는 한탄조와 함께 신명성이 잘 드러난다. '한배형식'(우리 음악에서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진행하다가 그 다음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진도아리랑을 중모리장단으로 느리게 부르면 비탄조의 애수를 띠지만, 세마치장단으로 여럿이 빠르게 부르면 매우 흥겨운 신명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강하고 굵게 떨며, 소리를 흘러내리듯 꺾어내는 등 육자배기 특유의 가락을 잘 살려 부르면 진도아리랑의 참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다.

유대안<작곡가·음악학 박사 umusic@hanmail.net>

최신 기사